9-6-12 擧以爲天子
하여 與接天下之政
하고 治天下之民
이라 伊摯
는 女之私臣
으로
注
詩商頌長發의 孔疏에 引鄭康成書注하여 云 伊尹은 名摯이니 湯以爲阿衡하여 以尹天下라 故로 曰 伊尹이라하다
史記殷本紀에 云 伊尹은 名阿衡인대 欲奸湯而無由라 乃爲有莘氏媵臣하여 負鼎俎하여 以滋味說湯이라한대
索隱
에 云
에 伊尹
은 名摯
라하고 孔安國
도 亦曰伊摯
라한대 然解者以阿衡爲官名
하니 非名也
라하다
案 孫子用間篇
에 云 殷之興也
에 伊摯在夏
라하니 卽
所本也
라 伊摯
는 亦見
離騷天問二篇
이라
畢云 莘은 漢書에 作㜪하고 玉篇에 㜪嫀二同色臻切하니 有㜪國이라하고
案 呂氏春秋本味에 云 有侁氏女子가 採桑이라가 得嬰兒於空桑之中하여 獻之其君하니 其君令烰人養之라
長而賢한대 湯聞伊尹하고 使人請之有侁氏하니 有侁氏不可라
伊尹亦欲歸湯하여 於是請取婦爲婚하니 有侁氏喜하여 以伊尹爲媵送女라한대 高誘曰 侁은 讀曰莘이라하다
有莘은 在今河南陳留縣이라 括地志에 云 古莘國은 在汴州陳留縣東五里라 故莘城이 是也라
陳留風俗傳에 云 陳留外黃에 有莘昌亭하니 本宋地로 莘氏邑也라하다 或云 在陝西郃陽이라한대 非라
발탁하여 천자로 삼아 함께 천하의 정권을 쥐고 천하의 인민을 다스렸다. 伊摯(伊尹)는 有莘氏 딸의 私臣으로
注
≪詩經≫ 〈商頌 長發〉 孔穎達의 疏에서 ≪尙書≫ 鄭玄의 注를 인용하여 “伊尹은 이름이 摯로 湯임금이 阿衡(재상)으로 임명해 天下를 다스리게[尹] 하였기 때문에 ‘伊尹’이라 한다.” 고 하였다.
≪史記≫ 〈殷本紀〉에 “伊尹은 이름이 阿衡인데, 湯임금에게 벼슬을 구하고자 하였으나 길이 없어 有莘氏의 媵臣이 되어 솥과 도마를 등에 지고 음식을 요리함으로써 湯임금에게 유세하였다.”고 하였는데,
≪史記索隱≫에 “≪孫子兵書≫에는 ‘伊尹은 이름이 摯이다.’라 하였고 孔安國도 ‘伊摯’라고 하였다. 그런데 해석하는 사람들은 阿衡을 관직명이라 하니 阿衡은 이름이 아니다.”라 하였다.
案:≪孫子≫ 〈用間〉에 “殷이 일어날 때에 伊摯는 夏에 있었다.”라 하였으니, 곧 司馬貞은 이에 근거한 것이다. 伊摯는 또한 ≪楚辭≫의 〈離騷〉와 〈天問〉 두 편에도 보인다.
畢沅:‘莘’은 ≪漢書≫에는 ‘㜪’으로 되어 있고, ≪玉篇≫에 “‘㜪’과 ‘嫀’은 둘 다 ‘色(색)’과 ‘臻(진)’의 反切로, 有㜪國이다.”라 하였고,
≪說文解字≫에 “呂不韋가 말하기를 ‘有侁氏는 伊尹에게 딸을 호송하게 하였다.’고 하였다”라 하였다.
생각건대, ≪呂氏春秋≫ 〈本味〉에 “有侁氏의 딸이 뽕을 따다가 안이 텅 빈 뽕나무 안에서 갓난아기를 얻어 임금에게 바치니 임금이 요리사에게 기르라고 하였다.
그가 성장하여 어질게 되자 湯임금이 伊尹의 소문을 듣고 사람을 시켜 有侁氏에게 그를 달라고 청하였는데 有侁氏가 안 된다고 하였다.
伊尹도 湯의 곁으로 가고자 하여, 이에 湯임금이 부인을 얻어 혼인하기를 청하자 有侁氏가 기뻐하며 伊尹을 시켜 딸을 호송하는 신하로 삼았다.”고 하였는데, 高誘가 “‘侁’은 ‘莘’으로 읽는다.”라 하였다.
有莘은 지금 河南 陳留縣이다. ≪括地志≫에 “古莘國은 汴州 陳留縣 동쪽 5리에 있는데, 故莘城이 이곳이다.
≪陳留風俗傳≫에 ‘陳留 外黃에 莘昌亭이 있는데, 원래 宋나라 땅으로 莘氏의 邑이다.’라 하였다.”라 하였다. 어떤 이는 陝西 郃陽이라 하는데 틀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