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墨子閒詁(2)

묵자간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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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3 亦以攻戰이요 雖北者且不著何
道藏本에는 如此하고 畢本에는 作中山諸國하고 云 四字 舊作且一不著何五字 一本如此
史記趙世家 云 惠文王三年 滅中山하고 遷其王於膚施라하고
에는 作四年이라 元和郡縣志 云 定州 戰國時 爲中山國이라
中山之地 方五百里 城中有山하니 故曰中山이라 今直隸定州是라하다
蘇云 中山之亡 當魏文侯世 墨子 與子夏子門人으로 同時 此事 猶當及見之 畢引史記趙惠文王三年滅中山하니 非是라하다
詒讓案 中山 初滅於魏하고 後滅於趙하니 詳所染篇이라
이나 此中山諸國四字 乃後人肊改 實當作且不著何四字
舊本 作且一하고 道藏本 作且不一하니 竝衍一字 疑柤之借字
國語晉語 獻公이라가 見翟柤之氛이라한대 韋注 云 翟柤 國名이라하니 是也
不著何 亦北胡國이니 周書王會篇 云 不屠何靑熊이라한대 孔晁注 云 不屠何 亦東北夷也라하고
管子小匡篇하고 破屠何라한대 尹注 云 屠何 東胡之先也라하고
通鑑外紀 周惠王三十三年 齊桓公 救燕破屠何라하니 屠著 聲類同하니 不著何 卽不屠何也
又王會 伊尹 獻令한대 正北有且略豹胡라하니 且略 卽此且及翟柤 豹胡 亦卽不屠何
豹不 胡何 竝一聲之轉이라 不屠何 漢爲徒何縣하여 屬遼西郡하니 故城在今奉天錦州府錦縣西北이라
據國語컨대 爲晉獻公所滅이요 所在 無考


또한 攻戰 때문이고, 비록 북쪽의 ()나라와 不著何(不屠何)라 할지라도
道藏本에는 이와 같다. 畢本에는 ‘中山諸國’이라 되어 있고, 말하기를 “〈‘中山諸國’〉 4자는 舊本에 ‘且一不著何’ 5자로 되어 있고, 어떤 본에는 이와 같다.
史記≫ 〈趙世家〉에 ‘ 惠文王 3년에 中山을 멸하고, 그 왕을 膚施에 옮겼다.’라 하였고,
史記≫ 〈六國年表〉에는 ‘4년이다’라 하였다. ≪元和郡縣志≫에 ‘定州戰國시대에 中山國이었다.
中山國의 땅은 사방 5백 리이고, 가운데 이 있으니 이 때문에 中山이라고 한 것이다. 지금 直隸州定州가 바로 이곳이다.’라 하였다.”라 하였다.
蘇時學:中山國이 멸망한 것은 文侯의 시대이다. 墨子子夏子門人과 동시대 사람이니 이 일을 오히려 마땅히 보았을 것이다. 畢沅이 ≪史記≫ 〈趙世家〉에 “ 惠文王 3년에 中山을 멸하였다.”라고 한 것을 인용하였으니, 옳지 않다.
詒讓案:中山은 처음에 나라에 멸망당하고, 뒤에 나라에 멸망당하였으니, ≪墨子≫ 〈所染〉에 상세히 나온다.
그러나 여기의 ‘中山諸國’ 4자는 곧 後人이 억측하여 고친 것이니, 실로 응당 ‘且不著何’ 4자가 되어야 한다.
舊本에 ‘且一’로 되어 있고, 道藏本에는 ‘且不一’로 되어 있으니, 모두 ‘’자가 잘못 들어갔다. ‘’는 아마 ‘’의 假借字일 것이니,
國語≫ 〈晉語〉에 “獻公田獵을 나갔다가 翟柤의 기운을 보았다.”라고 한 구절에 대해 韋昭에 “翟柤는 나라의 이름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不著何’는 역시 북쪽 의 나라이니, ≪逸周書≫ 〈王會〉에 ‘不屠何의 푸른 곰[靑熊]”이라 한 구절에 대해 孔晁에 “不屠何는 또한 東北 지방의 이다.”라 하였고,
管子≫ 〈小匡〉에 “胡貊을 패배시키고, 屠何를 격파하였다.”라고 한 구절에 대해 尹知章에 “屠何東胡의 선조이다.”라 하였고,
劉恕의 ≪通鑑外紀≫에 “ 惠王 33년에 桓公나라를 구제하고 屠何를 격파하였다.”라 하였다. ‘’와 ‘’는 소리가 비슷하니 不著何는 곧 不屠何이다.
또 ≪逸周書≫ 〈王會〉에 伊尹이 〈사방에서 貢物을〉 바치는 법령을 만들었는데 북쪽에 且略豹胡가 있다고 하니 ‘且略’이 곧 이곳의 ‘’이고 ≪春秋左氏傳≫의 ‘翟柤’이며, ‘豹胡’는 또한 곧 ‘不屠何’이다.
’와 ‘’, ‘’와 ‘’는 모두 음이 한 번 변전된 것이다. 不屠何나라 시대에 徒何縣이 되어 遼西郡에 속하였으니, 그 때문에 이 지금의 奉天省 錦州府 錦縣 서북쪽에 있다.
는 ≪國語≫에 의거해보건대 獻公에게 멸망당하였고, 있던 장소는 고찰할 수 없다.


역주
역주1 (一) : 저본에는 ‘一’이 있으나, 孫詒讓의 주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2 胡貊 : ≪逸周書≫ 〈王會解〉에 나오는 내용을 축약한 것이다.
역주3 劉恕 : 1032~1078. 北宋의 사학자이다. 字는 道原으로 筠州 鈞山 사람이다. 司馬光을 도와 ≪資治通鑑≫을 편수한 후 다시 상고 이래의 사적을 채택하여 ≪通鑑外紀≫를 지었다. 허탄한 내용이 들어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역주4 左傳 : 저본 傍注에 “생각건대, 위 글에서 孫詒讓이 ‘翟柤’를 ≪國語≫ 〈晉語〉에 의거하여 인용하였으니, 여기서 말하는 ‘左傳’은 잘못된 듯하다. ‘翟柤’는 ≪國語≫ 〈晉語 1〉에 보인다.”라고 하였다.

묵자간고(2) 책은 2020.12.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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