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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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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5-9-나(按)
按 告子之說 蓋謂人性 本無仁義 必用力而强爲 若杞柳 本非桮棬이라 必矯揉而後 就也
何其昧於理之甚邪
夫仁義 卽性也어늘
告子 乃曰 以人性爲仁義라하니 如此則性自性이요 仁義自仁義也 其可乎
夫以杞柳爲桮棬 必斬伐之‧屈折之라사 乃克有成이니
若人之爲仁義 乃其性之固有
皆知愛親하니 卽所謂仁이요 及其長也 皆知敬兄하니 卽所謂義
何勉强矯拂之有리오
使告子之言으로이면 世之人 必曰仁義 乃戕賊人之物이라하여 將畏憚而不肯爲하리니
率天下而害仁義
其禍 將不可勝計 孟子所以不容不시니이다


原注
5-9-나(按)
【臣按】 告子의 설은, 대체로 사람의 본성에 본래 仁과 義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힘을 써서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마치 구기나무와 수양버들이 본래 술잔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펴고 휜 뒤에야 완성되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 어쩌면 그리도 몹시 이치에 어두운 것입니까.
仁義는 바로 본성입니다.
그런데 고자가 마침내 “사람의 본성을 가지고 인의를 행한다.”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다면 本性은 本性이고 仁義는 仁義인 것이니, 이것이 옳겠습니까.
구기나무와 수양버들을 가지고 술잔을 만들 때에는 반드시 베고 휘어야만 마침내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仁義를 행하는 것은 바로 그 고유한 본성입니다.
강보에 싸인 안아줄 만한 어린아이도 모두 어버이를 사랑할 줄 아니 바로 이른바 ‘仁’이라는 것이고, 그 아이가 자라서는 모두 형을 공경할 줄 아니 바로 이른바 ‘義’라는 것입니다.
어찌 애써 펴고 굽힐 일이 있겠습니까.
만일 고자의 말이 행해진다면 세상 사람들은 반드시 仁義는 바로 사람을 베고 해치는 것이라고 하여 장차 두려워하고 꺼려서 기꺼이 행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천하 사람들을 몰아서 仁義를 해치는 것입니다.
그 화가 장차 이루 헤아릴 수 없게 될 것이니 이것이 孟子가 변론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역주
역주1 孩提之童 : 《孟子》 〈盡心 上〉 제15장에 보인다. 趙岐의 《孟子注》와 朱熹의 《孟子集註》에 따르면, 강보에 싸여 방긋 웃을 줄 아는 손에 들고 안아줄 만한 두세 살쯤 되는 어린아이를 말한다.
역주2 : 사고본에는 ‘辨’으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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