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中山王
注+中山, 國名. 箕子, 王名.가 有
注+妖病也.이어늘 祖母
注+馮太后, 母. 漢制, 諸侯王母‧祖母, 亦稱太后.가 自養視
하고 數爲禱祠解
注+解, 猶人言賽謝也.러니
上
이 遣
하여 將醫治之
注+謁者, 官名.하신대 由
가 素有狂易病
注+所謂.이라 病發怒去
하여 西歸長安
이어늘
尙書
가 簿責由
의 擅去狀
注+尙書, 官名. 責其故擅去, 令其書於簿也.한대 由
가 恐
하여 因誣言 中山太后
가 祝詛上及
라한대
傅太后
가 與馮太后
로 竝事元帝
라 追怨之
하더니 因是遣御史
하여 案驗數十日無所得
하여 更使
治之
하니
受傅太后指
하여 誣奏云 祝詛謀殺上
하고 立中山王
이라하여늘 하니 等死者
가 十
人
注+參, 馮太后弟, 中山王舅.이러라 張由
가 以先告封侯
하다
22-13-가1
한 애제漢 哀帝 때
중산왕 유기자中山王 劉箕子가
注+‘중산中山’은 국國 이름이다. ‘기자箕子’는 중산왕中山王의 이름이다. 생병眚病이 들자
注+‘생병眚病’은 알 수 없는 병이다. 조모인
풍태후馮太后가
注+‘풍태후馮太后’는 중산왕中山王(유흥劉興)의 모친이다. 한漢나라 제도에 따르면, 제후왕諸侯王의 모친과 조모祖母 또한 태후太后라고 칭하였다. 직접 간호를 하고 여러 차례 기도를 올려 병이 낫기를 빌었다.
注+‘해解’는 사람들이 ‘새사賽謝(제사를 올리고 감사를 표하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애제가
알자 장유謁者 張由를 보내 의원을 대동하고 중산왕을 치료하게 하였다.
注+‘알자謁者’는 벼슬 이름이다. 그런데 장유가 평소
광역병狂易病을
注+‘광역병狂易病’은 이른바 ‘풍을 앓아 실성했다.’라는 것이다. 앓고 있었다. 그 병이 발작하여 화를 내면서 사신 행렬을 이탈하여 서쪽으로 가서
장안長安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상서尙書는 장유가 멋대로 이탈한 정황에 대하여 책임을 묻고
문부文簿에 쓰게 하자
注+‘상서尙書’는 벼슬 이름이다. ‘부책유천거장簿責由擅去狀’은 장유張由가 무엇 때문에 제멋대로 이탈했는지에 대하여 책임을 묻고 문부文簿에 쓰게 했다는 뜻이다. 장유가 두려워하였다. 이 때문에 장유가 무고하여 말하였다. “중산왕의 태후가 폐하와
부태후傅太后를 저주하였습니다.”
부태후가 풍태후와 함께 원제元帝를 섬겼기에 원제가 붕어한 뒤에 풍태후에게 원한을 품었다. 이를 계기로 어사御史를 파견하여 수십 일 동안 조사하였으나 소득이 없어, 다시 중알자中謁者를 시켜 처리하게 하였다.
중알자가 부태후의 지시를 받고서 다음과 같이 무고하였다. “귀신에게 빌어 폐하를 시해하고 중산왕의 옹립을 획책하였습니다.” 중산왕(중산태후의 오류)이 이에 약을 마시고 자살하니
의향후 풍삼宜鄕侯 馮參 등 죽은 이가 17명이었다.
注+‘삼參’은 풍태후馮太后의 아우이자 중산왕中山王의 외삼촌이다. 장유는 먼저 고발했다는 이유로
후侯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