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16-8-나(안按)
[신안臣按] 덕종은 인재를 알아보는 명철함이 가장 부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노기盧杞에 대해서는 그의 간사함을 깨닫지 못하였고 강공보姜公輔에 대해서는 그가 정직함을 팔아먹는다고 의심하였으며,
이성李晟의 공훈功勳과 육지陸贄의 충성에 대해서는 멀리하고 밀어냈으며 배연령裴延齡의 기망과 위거모韋渠牟의 조급함‧비열함에 대해서는 친근히 하여 믿고 맡겼으니, 간녕奸佞을 충성으로 여기며 정직을 광망狂妄으로 여기는 것이 덕종보다 심한 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이번李藩을 보자마자 이번의 사람됨을 알아볼 수 있었으니, 이 당시에는 사견私見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기와 강공보 등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좋아하고 미워하는 사심이 있었기 때문에 감식의 어두움과 밝음이 이처럼 달랐던 것입니다.
옛 글에 이르기를 “공정함은 밝음을 낳고 치우침은 어두움을 낳는다.”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덕종의 마음가짐이 공평하여 치우친 데가 없는 것이 늘 이번을 보았을 때처럼 하였다면 신하들의 간사함과 올바름에 있어서 틀림없이 기준이 바뀌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니, 후대의 임금이 경계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