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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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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子侍讀 見上 應對 明敏하니 寵遇日隆이어늘
朱异 不悅하여 乘間白上호대 年老愛泉石하여 意在一郡自養이라한대 謂摛 眞欲之라하여 遂出爲太守하다


18-18-가
태자시독 서리太子侍讀 徐摛양 무제梁 武帝를 알현할 때 응대하는 것이 명민하자 무제의 총애와 대우가 날로 융성해졌다.
주이朱异가 이를 기뻐하지 않아서 기회를 보아 무제에게 아뢰기를 “서리가 연로하고 산수山水를 좋아하여 그 뜻이 자봉自奉할 정도의 작은 고을을 맡는 데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무제는 서리가 참으로 이것을 원한다고 생각하여, 마침내 서리로 하여금 나가서 신안 태수新安 太守가 되게 하였다.


역주
역주1 18-18-가 : 《資治通鑑》 卷155 〈梁紀11 武帝11〉 中大通 3년(531) 5월 27일 병신일 조에 보인다.
역주2 徐摛 : 474~551. 남조 梁나라의 문학가로 宮體詩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자는 士秀이며 또 다른 자는 士繢이다. 지금의 산동성 郯城 북쪽에 있었던 東海 郯 사람이다. 처음에는 晉安王 蕭綱(503~551, 재위 549~551)의 侍讀이었으며 소강이 태자가 된 뒤에는 太子左衛率이 되었다. 侯景(503~552)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서리만이 홀로 簡文帝 蕭綱을 모셨다. 551년에 간문제가 유폐되어 알현할 수 없게 되자 병이 나서 죽었다. 사후에 侍中太子詹事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貞’이다. ‘侯景’은 18-19-가 ‘侯景’ 주 참조. 《梁書 卷30 徐摛列傳》 《南史 卷62 徐摛列傳》
역주3 新安 : 郡 이름이다. 治所는 지금의 절강성 淳安縣 서쪽에 있었다.

대학연의(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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