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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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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15-8-나(按)
按 好
雖人性之本然而道之譽
亦世之所有 故不可以不察也
章之不孝 人所共稱也而孟子則曰此 父子責善之過爾 非不孝也라하시고
리오하시니 是是非非之大致 固若黑白之了然이로되
而其似是而非‧似非而是者則常人之所易惑也 不有聖賢 原情於疑似之中하며 考實於曖昧之際 烏能適其當乎리오
自人君言之컨대 必如然後 爲能察是非之實이니 不然則未有不以毁譽而亂眞者니이다


原注
15-8-나()
[신안臣按]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은 비록 사람의 본성이 본래 그러하지만, 도를 어겨서 구하는 칭찬과 완전하기를 추구하다가 받는 비방 또한 세상에 있기 때문에 세심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광장匡章의 불효는 사람들이 모두 일컬었지만 맹자는 “이는 부자간에 책선責善이 지나쳤던 것일 뿐이지, 불효가 아니다.”라고 하였고,
중자仲子의 청렴은 또한 사람들이 모두 일컬었지만 맹자는 그가 형을 피하고 모친을 떠난 죄를 책망하여 “이것이 어찌 청렴한 것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시시비비의 대체는 본래 흑백처럼 명료합니다.
그러나 그중에 옳은 것 같지만 그릇되고 그릇된 것 같지만 옳은 것은 보통 사람이 쉽게 혼동하는 것입니다. 성현聖賢이 비슷하여 분간하기 어려운 것 중에서 실정을 궁구하지 않고 모호한 사이에서 실정을 고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합당한 데 알맞게 할 수 있겠습니까.
임금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반드시 제 위왕齊 威王아대부阿大夫팽형烹刑에 처하고 즉묵대부卽墨大夫를 봉해준 것처럼 한 뒤에야 시비의 실정을 제대로 살핀 것이 되니,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비방과 칭찬으로 실상을 어지럽히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역주
역주1 善惡 : 대전본에는 ‘惡善’으로 되어 있다.
역주2 : 대전본에는 ‘達’로 되어 있다.
역주3 違道之譽 : 《서경》 〈虞書 大禹謨〉에 “도를 어겨서 백성의 칭찬을 구하지 말라.[罔違道以干百姓之譽]”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연유한 말이다.
역주4 求全之毁 : 《맹자》 〈離婁 上〉에 “예기치 않은 칭찬이 있고 완전하기를 추구하다가 받는 비방이 있다.[有不虞之譽 有求全之毁]”라고 하였다.
역주5 匡章……孝也 : 《맹자》 〈離婁 下〉 제30장에 따르면, 齊나라 사람 匡章은 온 나라 사람들에게 불효자로 비난받았지만 맹자는 그와 교유하며 예모까지 갖추었다. 公都子가 그 이유를 묻자, 맹자는 광장이 불효라고 할 수 없다고 답하였다. 왜냐하면 불효의 다섯 가지 조목 중에 광장이 해당하는 것이 없으며 단지 부자 사이에 責善을 지나치게 하다가 부친을 봉양할 수 없게 되었을 뿐인데, 오히려 스스로 혐의하여 처자의 봉양을 종신토록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주6 : 대전본에는 ‘康’으로 되어 있으나, 宋 太祖 趙匡胤을 피휘한 것이다.
역주7 仲子……廉哉 : 《맹자》 〈滕文公 下〉 제10장에 보인다. 제나라 사람 陳仲子는 於(오)陵에 거처할 때 3일 동안 먹지 못하여 귀에 들리는 것이 없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가 우물가에서 굼벵이가 반 이상 파먹은 오얏을 삼킨 뒤에야 보고 들을 수 있었던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匡章은 진중자가 청렴하다고 여겼는데, 맹자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진중자는 제나라의 世家 출신으로 형 陳戴가 萬鍾의 녹을 받았지만 불의하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을 먹지 않고 형의 집에서 거처하지 않으면서 아내가 해주는 밥을 먹고 오릉의 집에서 거처하였기 때문이다.
역주8 齊威……卽墨 : 齊 威王(재위 기원전 356~기원전 320)은 성이 田, 이름이 因齊이다. 부국강병을 추구하여 鄒忌를 재상으로 기용하고 孫臏을 군사로 삼아 국세를 신장하여 桂陵과 馬陵에서 魏나라를 대파하고 稷下의 學宮을 설치하여 학문을 중흥시켰다. 당시 阿大夫는 阿를 잘 다스리지 못하였으나 위왕의 측근에게 뇌물을 바쳐 항상 위왕에게 자신을 칭찬하도록 하였고 卽墨大夫는 卽墨을 잘 다스렸으나 뇌물을 바치지 않아 항상 비방을 받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위왕이 사람을 보내 살펴보고 평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즉묵대부에게 采邑 1만호를 봉해주고 아대부를 불러들여 烹刑에 처하였다. 《史記 卷46 田敬仲完世家》

대학연의(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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