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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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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齊侍中 有寵於하여 姦諂百端하니 寵愛日隆이러라
每侍左右 言辭容止 極諸鄙褻하여 以夜繼晝하여 無復君臣之禮하고 前後賞賜 不可勝러라
嘗謂帝曰 自古帝王 盡爲灰土하니 堯‧舜‧桀‧紂 竟復何異리잇고 陛下 宜及少壯하여 極意爲樂하소서
一日取 可敵千年이니 國事 盡付大臣이면 何慮不辦이리오 無爲自勤約也니이다
大悅하여 하고 三四一視朝호대 須臾復入하여 唯翫聲色하니 朝政 日紊하더라


24-5-가
북제北齊시중 화사개侍中 和士開가 북제의 임금 고담高湛(무성제武成帝)에게 총애를 받아 갖가지 방법으로 간사하게 아첨하니 총애가 날로 커졌다.
고담을 곁에서 모실 때마다 화사개의 언사와 행동거지가 매우 비루하고 설만褻慢하여 밤낮없이 이어져서 더 이상 군신간의 가 없었으며 전후에 걸쳐 상으로 하사받은 것을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
화사개가 한번은 무성제武成帝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예로부터 제왕들이 모두 진토塵土가 되었으니 임금‧임금‧걸왕桀王주왕紂王이 결국 또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폐하께서는 마땅히 젊으실 때 마음껏 즐거움을 누리셔야 할 것입니다.
하루라도 쾌락을 누리는 것이 천년을 사는 것과 맞먹을 수 있으니, 나랏일을 모두 대신에게 맡기시면 어찌 잘해내지 못할까 우려할 것이 있겠습니까. 스스로 근검을 실천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성제가 크게 기뻐하여 관작과 재정 등에 관한 일을 대신들에게 나누어 맡기고 사나흘에 한 번 꼴로 조회를 보았는데, 잠깐 있다가 도로 들어가서 오로지 가무와 여색을 즐기니 조정의 정사가 날로 문란해졌다.


역주
역주1 24-5-가 : 《資治通鑑》 卷169 〈陳紀3 文帝 下〉 天嘉 4년(563) 6월 기사에 보인다.
역주2 和士開 : 524~571. 北朝 北齊 때의 간신이다. 자는 彦通으로, 淸都 臨漳 사람이다. 본래의 성은 素和氏이다. 武成帝 高湛(고담)이 즉위하기 전부터 총애를 받았으며 고담이 즉위한 뒤 黃門侍郞, 侍中, 尙書左僕射를 역임하였다. 後主 高緯가 즉위한 후에 淮陽王에 봉해지고 尙書令‧錄尙書事가 되었으며, 고담이 죽기 전에 후주를 보좌해줄 것을 부탁받았다. 고담이 죽은 후 더욱 방자해져 琅邪王 高儼(고엄)에게 미움을 사 피살당했다.
역주3 齊主湛 : 537~568(재위 561~565). 北齊의 4대 황제인 武成帝 高湛으로, 高歡의 아들이다. 東魏 때 長廣郡公에 봉해졌으며, 文宣帝 高洋이 北齊를 건국하고 나서 尙書令, 太尉 등을 역임하였다. 고양이 죽고 廢帝 高殷이 즉위한 뒤 孝昭帝 高演이 고은을 시해하고 즉위했는데, 이듬해 고연이 죽고 나서 황제가 되었다. 즉위 후에는 간신 和士開를 총애하고 황음무도하여 국정을 크게 그르쳤다. 565년에 태자 高緯에게 선위하고, 태상황이 되었다.
역주4 : 대전본‧사고본에는 ‘紀’로 되어 있다.
역주5 : 대전본에는 ‘決’로 되어 있다.
역주6 以官……大臣 : 이때 武成帝가 趙彦深에게는 官爵을, 元文遙에게는 財政을, 唐邕(당옹)에게는 外兵과 騎兵을, 信都 사람 馮子琮과 胡長粲에게는 東宮을 관장하게 하였다. 《資治通鑑 卷169 陳紀3 文帝 下 天嘉 4年》
역주7 : 대전본‧사고본에는 ‘月’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4)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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