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寶初
에 韋堅
이 爲吏
에 以幹敏稱
이러니 上
이 使之督
租運
하신대
堅이 引滻水하여 抵苑東望春樓下爲潭하여 以聚江淮運船할새
役夫匠‧通漕渠하여 發人丘壟하니 自江淮至京城히 民間이 蕭然愁怨이러니
二年而成이어늘 上이 幸望春樓하여 觀新潭이러시니 堅이 以新船數百艘로 遍榜郡名하고 陳郡中珍貨於船背하고
陝尉崔成甫
가 著錦半臂
와 缺胯綠衫而裼之
하고 紅袙首
하고 居前船
하여 唱
하고
使美婦百人
으로 盛飾而和之
하니 連檣數里
라 堅
이 跪進諸郡
하고 仍上百
한대
上이 置宴竟日而罷하시니 觀者가 山積이러라 加堅左散騎常侍하고 其僚屬吏卒을 褒賞有差하고 名其潭曰廣運이라하다
24-8-가2
천보天寶 연간 초에 위견韋堅이 관리가 되자 재간 있고 민첩하다고 칭찬을 받았다. 현종玄宗이 위견으로 하여금 강회江淮 지역의 조세 운송을 감독하게 하자,
위견이 산수滻水를 끌어들여 금원禁苑 동쪽 망춘루望春樓 아래까지 이르도록 하여 못을 만들고서 강회 지역의 조세 운송선을 집합시키게 하였다.
이때 인부와 공장工匠들을 노역에 동원하고 조운漕運에 이용하는 운하를 개통하면서 백성들의 무덤까지 파헤치니 장회에서 경성京城(장안長安)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이 근심과 원망으로 뒤숭숭하였다.
공사가 2년 만에 완공되자, 현종이 망춘루에 거둥하여 새로 만든 못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위견이 새로 만든 배 수백 척에 각 군郡의 이름을 두루 표시하고 갑판에 각 군의 진귀한 재화들을 진열하게 하였다.
섬현위 최성보陝縣尉 崔成甫가 비단 반팔 옷과 아랫도리 부분을 터서 만든 녹삼綠衫을 착용하고서 녹삼 윗도리는 벗은 채 머리에 붉은 두건을 쓰고 선두에 있는 배에 타고 있으면서 〈득보가得寶歌〉를 선창하고,
미녀 100명을 화려하게 단장시켜 화답하게 하니 돛대가 몇 리에 걸쳐 이어졌다. 위견이 꿇어앉아 여러 군郡의 경화輕貨들을 올리고 이어서 온갖 진수성찬을 올리자,
현종이 연회를 베풀어 날이 다 저물어서야 파하니 구경하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현종이 위견에게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를 더하고 그의 속관과 이졸吏卒들에게 차등을 두어 포상하였으며, 그 못을 광운담廣運潭이라고 이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