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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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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13-13-나(按)
按 李藩之對 裴潾之諫 皆忠言至論也어늘 憲宗 一不之察而卒服金丹하여 以殞其身하니
自古人主 爲藥所誤者 多矣언마는 獨擧憲宗者
自是而後 以藥致疾者 又三君이니 昏童이라 無足譏者어니와
皆英主로되 亦復爲之하여 覆轍相尋而不知鑑하니 毋乃惑之甚‧蔽之甚乎잇가


原注
13-13-나(按)
[臣按] 李藩의 대답과 裴潾의 간언이 모두 충언이자 正論이었는데, 헌종이 전혀 살피지 않고 끝내 금단을 복용하여 죽음을 자초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임금이 약에 의해 잘못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신이 유독 헌종을 거론한 것은, 그가 영명한 임금으로서 미혹되지 않았어야 했는데도 미혹되었기 때문에 매우 안타깝게 여겨서입니다.
이 이후에 약 때문에 질병에 걸린 임금이 또 세 사람이었습니다. 唐 敬宗은 어리석은 아이인지라 나무랄 것도 없지만,
武宗과 宣宗은 모두 영명한 임금이었는데도 또한 그러한 일을 하여 전철을 다시 밟고 경계할 줄 몰랐으니, 매우 미혹되고 어두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역주
역주1 以其……三君 : 사고본에는 ‘英主也’로 되어 있다.
역주2 敬宗 : 809~826(재위 824~826). 당나라 13대 황제 李湛으로, 시호는 睿武昭愍孝皇帝이다. 12대 황제인 穆宗의 장자로, 목종 長慶 2년(822)에 태자가 되었다. 즉위한 뒤 소인배를 가까이하고 정치에 태만하였다가 결국에는 환관 劉克明에게 시해당하였다.
역주3 : 武宗(814~846, 재위 840~846)을 가리킨다. 당나라 15대 황제 李炎으로, 시호는 至道昭肅孝皇帝이다. 초휘는 瀍(전)으로, 穆宗의 다섯 번째 아들이자 14대 황제 文宗의 아우이다. 문종이 병들자 환관 仇士良 등이 조서를 고쳐 태자를 폐하고 무종을 皇太弟로 삼았다. 즉위한 뒤 李德裕‧李紳 등을 재상으로 등용하고 牛僧孺‧李宗閔 등을 멀리 폄적하였다. 會昌 5년(845)에는 사찰을 없앨 것을 명하고 승려 수십만 명을 환속시키는 등 불교를 탄압하였다. 그러나 신선을 좋아하여 金丹을 복용하다가 죽었다.
역주4 : 宣宗(810~859, 재위 847~859)을 가리킨다. 당나라 16대 황제 李忱으로, 초휘는 怡이다. 11대 황제인 憲宗의 열세 번째 아들이다. 武宗 會昌 6년(846) 환관 馬元贄 등에 의해 皇太叔이 되었으며, 즉위한 후에는 李德裕의 당파를 축출하고 牛僧孺의 당파를 기용하였다. 그리고 재상 令狐綯와 환관들을 주살할 계획을 세웠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후에 長生藥을 복용하다가 죽었다. 시호는 聖武獻文孝皇帝이다.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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