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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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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15-6-나(按)
按 子游 以行不由徑‧非公事不至其室而知澹臺之賢하니
15-6-나(按)
[臣按] 子游는 길을 다닐 적에 샛길로 다니지 않고 공적인 일이 아니면 자신의 집에 오지 않은 것으로 담대멸명이 어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蓋二者 雖若細行이나 因而推之컨대 行且不由徑하니 其行己也 肯枉道而欲速乎
이 두 가지는 비록 사소한 일인 것 같지만 이를 통해 미루어보면 길을 다닐 적에도 샛길로 다니지 않으니, 그의 처신이 도를 굽혀 빨리 이루고자 하겠습니까.
非公事且不至其室하니 其事上也 肯阿意以求悅乎 子游 以一邑宰 其取人 猶若是하니
공적인 일이 아니어도 자유의 집에 오지 않았으니 그 윗사람을 섬기는 것이 윗사람의 뜻에 영합하여 기쁘게 하기를 구하겠습니까. 子游가 일개 읍재로서 인재를 취하는 것을 오히려 이와 같이 하였으니,
等而上之 宰相 爲天子擇百僚하며 人主 爲天下擇宰相 必以是觀焉 可也
여기서 단계를 높여 적용해서 말한다면 재상이 천자를 위하여 백관을 선발하며 군주가 천하를 위하여 재상을 선발할 때 반드시 이에 따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之論命相 欲求宦官‧宮妾不知名之人하고 而司馬光之用諫官 亦取不通書問者爲之하니
그러므로 王素가 재상의 임명에 대해 논할 적에 宦官과 宮妾이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구하고자 하였고, 司馬光이 諫官을 임용할 때 역시 서신을 주고받지 않은 사람을 취하여 간관으로 삼으려 하였으니,
必若是然後 剛方正大之士 進而奔競諂諛之風 息矣리이다
반드시 이처럼 한 뒤에야 강직하고 방정한 선비가 나아와 벼슬하고 앞다투어 명리를 추구하고 아첨하는 풍조가 종식될 것입니다.
역주
역주1 王素……之人 : 宋 仁宗이 王素에게 고관 중에서 宰相의 직임에 임명할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자, 왕소가 “오직 환관과 궁첩이 성명을 모르는 사람을 그 직임에 충원할 만합니다.[惟宦官宮妾不知其姓名者 可充其選]”라고 진언하였다. 이에 仁宗이 富弼을 재상으로 임명했다고 한다. 《九朝編年備要 卷15 以文彦博富弼同平章事》 《宋名臣言行錄 後集 卷4》
역주2 王素 : 1007~1073. 자는 仲義이다. 北宋의 문신이다. 太尉 王旦의 손자이다. 莘縣 출신이다. 北宋 仁宗 天聖 5年(1027)에 進士가 되었고, 穎州 通判이 되었다. 이후 侍御史‧知鄂州事‧知諫院 등을 거쳐, 仁宗 연간에 歐陽脩‧蔡襄‧余靖 등과 함께 諫官이 되었다. 일찍이 王德用이 인종에게 미녀 2인을 바치자 왕소가 직언하여 출궁시켰다. 왕소의 爲政은 仁情에 부합하기를 힘쓰고 斷案에 뛰어났으며 軍務에도 능했다. 이후 知成都府事로 재임할 때, 蜀 지방에 鐵錢의 유통이 많아 물가가 치솟자 鑄錢을 금지하여 물가를 안정시켰다. 治平 원년(1064)에 西夏가 침범하자 知渭州事가 되어 서쪽 변경을 안정시켰고, 神宗 熙寧 원년(1068)에는 知太原府事가 되어 제방을 쌓고 선박을 건조하여 汾河의 범람에 대처하고, 山西 지역에 災荒이 발생하자 진휼하였다. 관직이 工部 尙書에 이르렀다. 시호는 懿敏이다.

대학연의(3)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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