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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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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策曰 臣 謹按春秋之文호니 求王道之端인댄 得之於正이니
正次王하고 王次春하니 春者 天之所爲也 正者 王之所爲也
其意曰 上承天之所爲而下以正其所爲하여 正王道之端云爾 然則王者 欲有所爲인댄 宜求其端於天이니
天道之大者 在陰陽하니 陽爲德이요 陰爲刑이니 主殺而德 主生이라
是故陽 常居大夏而以生育長養爲事하고 常居大冬而積於空虛不用之處하니 以此 見天之任德不任刑也로소이다
使陽으로 出布施於上而主歲功하고 使陰으로 入伏於下而時出佐陽하니
陽不得陰之助 亦不能獨成歲언마는 終陽以成歲爲名하니 天意也
王者 承天意以從事 故任德敎而不任刑하나니 刑者 不可任以治世 猶陰之不可任以成歲也
爲政而任刑이면 不順於天이라 故先王 莫之肯爲也하시니
廢先王德敎之官而獨任執法之吏治民하니 毋乃任刑之意與
孔子 謂之虐이라하시니 虐政 用於下而欲德敎之被四海 故難成也니이다


25-7-가
漢 武帝 建元 초에 董仲舒가 다음과 같이 對策을 올렸다. “신이 삼가 《춘추春秋》의 글을 고찰해보니 왕도王道의 단서를 찾아본다면 ‘’에서 얻었습니다.
’은 ‘’ 다음의 자리에 있었고, ‘’은 ‘’ 다음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은 하늘이 행하는 바이고, ‘’은 제왕이 행하는 바입니다.
그 의미는 ‘위로는 하늘이 행하는 바를 받들고 아래로는 자신이 행하는 바를 바로잡음으로써 왕도王道의 단서를 바로잡는다.’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제왕이 훌륭한 일을 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하늘에서 그 단서를 구해야 합니다.
천도天道에서 가장 중대한 것은 바로 에 있습니다. 이 되고 은 형벌이 되니, 형벌은 죽임을 주관하고 덕은 생육을 주관합니다.
이 때문에 은 항상 한여름에 머물면서 만물의 생장과 양육을 일로 삼고, 은 항상 한겨울에 머물면서 텅 비어 작용하지 않는 곳에 쌓입니다. 이로 볼 때 하늘은 덕에 맡기지 형에 맡기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董仲舒董仲舒
하늘은 양으로 하여금 나와서 위에 베풀어져 한 해의 일을 주관하게 하고, 음으로 하여금 들어가 아래에 잠복하여 때때로 나와서 양을 보좌하도록 하였습니다.
양이 음의 도움을 얻지 못하면 또한 양 혼자서는 한 해의 일을 완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결국 양이 한 해의 일을 완수하는 것으로 이름을 삼았으니 이것이 하늘의 뜻입니다.
왕도王道를 행하는 군주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 정사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덕과 교화에 맡기지 형벌에 맡기지 않습니다. 형벌은 맡겨서 세상을 다스릴 수 없는 것이 마치 음이 맡겨서 한 해의 일을 완수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사를 행하면서 형벌에 맡기면 하늘의 뜻에 따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전 시대의 훌륭한 군왕들은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이전 시대의 훌륭한 군왕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덕과 교화를 맡은 관직을 폐지하고, 오직 법률을 집행하는 관리에게만 맡겨서 백성을 다스리니 형벌에 맡기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가르치지 않고 죽이는 것을 「잔학함」이라고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래에 학정虐政을 쓰면서 덕과 교화가 천하에 펴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성공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역주
역주1 25-7-가 : 《前漢書》 권56 〈董仲舒列傳〉에 보인다. 해당 대책은 漢 武帝 建元 원년(기원전 140) 10월에 무제의 策問에 대한 董仲舒의 세 편의 對策 가운데 하나로 〈擧賢良對策〉이라고 불린다. 인용된 내용은 《春秋》의 ‘隱公元年春王正月’의 해석을 기초로 왕도정치를 논한 것이다.
역주2 武帝……對策 : 《資治通鑑》에 따르면, 漢 武帝 建元 원년(기원전 40) 10월의 일이다. 《說文解字》에 따르면 ‘策’은 ‘상의하다[謀]’라는 뜻으로, 對策은 詔書로 政事나 經義 등에 대해 가설하여 물으면 이에 응하여 의견을 진달하는 것이다. 漢 文帝 때 晁錯의 대책에서 시작되어 이후 인재를 선발하는 시험 방식의 하나로 운용되었다. 《전한서》에는 “무제는 즉위하여 현량문학의 선비들을 추천하라는 조서를 내렸는데, 전후로 책문에 대책한 사람이 백여 명이었다. 동중서는 현량으로 대책하였다.[武帝卽位 擧賢良文學之士 前後百數 而仲舒以賢良對策焉]”라는 내용이 보인다. 이때 동중서는 天人感應說을 대책의 요지로 삼았는데, 대책이 모두 셋이었기 때문에 ‘天人三策’이라고도 한다. 《前漢書 卷56 董仲舒傳》 《資治通鑑 卷17 漢紀9 武帝 上之上 建元 元年》 《文體明辨序說 策》
역주3 董仲舒 : 기원전 179~기원전 104. 西漢의 今文經學家이다. 信都 廣川 사람이다. 어려서 《春秋》를 익혀 景帝 때 博士가 되었다. 학문 연구에 몰두하여 3년 동안 뜰에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武帝 때, 賢良對策에 응하여 天人感應‧大一統‧罷黜百家‧獨尊儒術 등을 주장하여 무제의 칭찬을 받았다. 이후 江都相‧膠西相 등을 역임하였으며,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저술에 전념하였다. 그의 학문은 《春秋公羊傳》을 중시하였고, 특히 유학을 중심으로 陰陽五行 사상을 받아들여 漢代의 통치 철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저술로는 《春秋繁露》 등이 있다.
역주4 不敎而殺謂之虐 : 《논어》 〈堯曰〉 제2장에 보인다.
역주5 : 대전본에는 ‘誅’로 되어 있다.
역주6 : 대전본‧사고본에는 없다.

대학연의(4)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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