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臣按】 漢 武帝가 蔡義의 《詩》 강설을 기쁘게 여겨 그를 불러 자신의 가까이에 두었을 뿐 아니라 또 자신의 아들에게 전수해주게 하였으니, 그 뜻이 또한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채의의 강설이 과연 능히 시인의 뜻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시詩》 3백 편 중 〈關雎〉를 첫 편으로 삼은 것은 風化의 근원을 중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무제의 衛后는 謳者(歌女)의 신분으로 황후의 지위에 올랐고 李夫人은 倡人(歌妓)의 신분으로 후궁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큰 근본이 이와 같았으니 다른 것은 보지 않아도 알 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치를 다하고 욕심을 지극히 하는 것은 〈鴛鴦〉의 뜻이 아니며 조세를 무겁게 하고 거두는 것을 규정에 맞지 않게 하는 것은 〈碩鼠〉의 경계에 어두운 것입니다.
하늘이 가문 것을 封禪하기 위해 쌓은 제단을 건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여겼으니 어찌 〈雲漢〉의 두려워함이 있었겠습니까.
참언을 받아들여 태자를 죽였으니 〈靑蠅〉의 참소가 끝이 없다는 탄식을 살피지 않은 것입니다.
孔子는 “《詩》 3백 편을 외우더라도 정사에 통달하지 못한다면 비록 많이 외운다고 한들 또한 어디에 쓰겠는가.”라고 하였으니, 武帝가 이에 가까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