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臣按】 부모는 자식의 천지이며 천지는 사람의 부모이니, 사실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섬김이 효성스러우면 하늘을 섬기는 이치가 밝게 드러나고 어머니를 섬김이 효성스러우면 땅을 섬기는 이치가 환히 드러나게 됩니다.
‘밝게 드러났다’, ‘환히 드러났다’고 하는 것은 밝게 드러나서 마음에 분명하게 깨닫는 바가 있음을 이릅니다.
“아버지는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는 나를 길러주셨다.”라는 것은 이른바 ‘자식의 천지’라는 것입니다.
만물이 이에 의지하여 시작한다.”, “지극하다, 坤元이여!
만물이 이에 의지하여 생겨난다.”라는 것은 이른바 ‘사람의 부모’라는 것입니다.
原注
그러므로 樂正子春이 말하기를 “하늘이 낳은 것과 땅이 기른 것 중에 오직 사람이 위대하니, 부모가 온전히 낳아주시거든 자식이 이를 온전히 하여 돌아가면 효라고 이를 만하다.
그 신체를 훼손하지 않으며 그 몸을 욕되게 하지 않으면 온전히 한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므로 발 한 번 들 때에도 감히 부모를 잊지 않으며 말 한 번 할 때에도 감히 부모를 잊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니, 자식 된 자의 효가 이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천지를 섬기는 도가 또한 어찌 이와 다르겠습니까.
原注
무릇 사람은 이 몸이 있으면 이 마음이 있게 되고 이 마음이 있으면 이 본성이 있게 되니, 이것은 천지가 나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五常과 온갖 善이 본래 온전히 구비되어 있으니, 털끝 하나라도 훼손한다면 이는 그 주신 것을 漫忽히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孟子가 “그 마음을 보존하여 그 본성을 기르는 것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湯王이 ‘하늘의 이 밝은 命을 늘 돌아본 것’은 바로 한순간이라도 보존되지 않으면 하늘을 섬기는 것이 아닐까 하여 두려워한 것이며, 문왕이 ‘오르내림에 상제의 좌우에 있었던 것’은 바로 반걸음이라도 혹 어김이 있으면 하늘을 섬기는 것이 아닐까 하여 두려워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본다면 부모를 섬기는 것과 하늘을 섬기는 것이 어찌 별개의 길이 있겠습니까.
原注
천지의 도는 신묘하여 헤아릴 수 없는 면에서는 ‘神’이라 이르고, 밝게 드러나서 속일 수 없는 면에서는 ‘明’이라 이릅니다.
나의 하늘을 섬김이 밝게 드러나고 땅을 섬김이 환히 드러나면 위에서 굽어보는 천지신명이 환히 드러나서 가릴 수 없게 되니, 이것이 바로 다음에 나오는 “神明과 통한다.”라는 구절의 뜻입니다.
孔子가 이미 孝를 말하고 공경[弟]을 또 아울러 말하였기 때문에 비록 천자와 같이 귀한 신분이라도 존숭하는 이는 아버지이며 우선시하는 이는 형이라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종묘에 공경을 지극히 한다.” 이하부터는 오직 효를 말했을 뿐 애초에 공경[弟]까지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는 효와 공경은 동일한 마음이어서 효가 지극하면 공경 역시 지극하고, 하늘과 사람은 동일한 이치여서 신명과 통하면 또한 사해에 빛나기 때문입니다.
이는 효와 공경의 지극한 공효를 미루어 말한 것이니, 임금이 된 이는 마땅히 깊이 체행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