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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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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 卷18
格物致知之要(二)
辨人材
憸邪罔上之情[姦臣]
하여注+高, 宦者.하여 常侍中用事러니 二世燕居 召高謂曰
人之居世間 猶騁六驥過決隙也 吾欲耳目之所好하며 窮心志之所樂하여 以終吾年壽하노니 可乎
曰 此 賢主之所能行而昏亂主之所禁也之謀 諸公子及大臣 皆疑焉而諸公子 盡帝兄이요 大臣 又先帝之所置也
今陛下 初立 此皆怏怏不服하니 恐爲變하노니 陛下 安得爲此樂乎시리오
二世曰 爲之奈何 曰 嚴法而刻刑하여 令有罪者 相坐誅至收族하고 滅大臣而遠骨肉하고
貧者 富之하며 賤者 貴之하고 盡除去先帝之舊臣하고 更置陛下所親信者하시면
如此則害除而姦謀이라 陛下 安枕肆意寵樂矣시리이다
二世然之하여 乃更爲法律하여 群臣‧諸公子有罪 輒下高令治之하여
殺大臣하며 公子十二人 僇死咸陽市하고 財物 入縣官하니
法令誅罰 日益刻深이라 群臣人人 自危하여 欲畔者衆이러라
於是 하니 傑俊 相立爲侯王하여 叛秦하다


대학연의 권大學衍義 卷18
사물의 원리를 깊이 연구하여 지성知性의 힘을 극대화하는 핵심적인 방법들(2)
인재人材를 구별하는 방법들
간사奸邪한 자들이 임금을 속인 정상[간신]
18-1-가
진 이세秦 二世가 즉위하여 조고趙高낭중령郞中令으로 임명하였다.注+조고趙高는 환관이다. 그리하여 조고가 늘 궁중에서 이세를 모시며 대권을 장악하였는데, 이세가 한가로이 거처할 때 조고를 불러 말하였다.
“사람이 세상에 사는 시간은 여섯 마리의 준마가 끄는 수레를 타고서 벌어진 틈 앞을 지나가는 것처럼 빠르다. 나는 눈과 귀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 누리고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다하여 내 천수天壽를 마치고 싶다. 그럴 수 있겠느냐?”
조고가 대답하였다. “이것은 현명한 군주나 행할 수 있는 것이며 어리석고 무도한 군주는 금하는 것입니다. 저 사구沙丘의 일에 대해 여러 공자와 대신이 모두 의심하고 있는데, 여러 공자는 모두 폐하의 형들이고 대신은 또 선제先帝께서 임명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폐하께서 갓 즉위한 이때 이들이 모두 앙앙불락하며 심복하지 않고 있으니 변란을 일으킬까 두렵습니다. 폐하께서 어떻게 이런 즐거운 일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이세二世가 말하였다. “어떻게 해야겠느냐?” 조고趙高가 대답하였다. “법을 엄히 적용하고 형벌을 혹독하게 하여 죄를 지은 자들을 연좌시켜 죽이고 그들의 종족까지 모두 잡아들여 멸족시키며, 대신들을 없애고 골육을 멀리하십시오.
가난한 자를 부유하게 하고 천한 자를 귀하게 만들며, 선제先帝의 옛 신하들을 모두 제거하고 폐하께서 친근히 여기고 신임하는 자들로 다시 임명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해악이 제거되고 간사한 모의가 끊길 것이니, 폐하께서는 베개를 편히 하고서 뜻하시는 대로 영광과 즐거움을 맘껏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세二世가 옳다고 여겨 이에 다시 법률을 고쳐서 신하들과 공자들이 죄를 지으면 곧바로 조고趙高에게 넘겨 국문하고 치죄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대신 몽의蒙毅 등을 죽이고 공자 12명이 함양咸陽의 저자에서 처형을 당하도록 하였으며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조정에 귀속시켰다.
법령과 주벌이 날이 갈수록 더욱 가혹해지자 여러 신하들은 저마다 스스로 위태롭게 여겨 반란을 일으키려는 자들이 많아졌다.
그리하여 수졸 진승戍卒 陳勝오광吳廣 등이 난을 일으켜 산동山東에서 기병起兵하자, 준걸들이 저마다 후왕侯王으로 즉위하여 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역주
역주1 18-1-가 : 《史記》 卷87 〈李斯列傳〉, 《資治通鑑》 卷7 〈秦紀2 二世皇帝上〉 원년(기원전 209) 여름 4월 조에 보인다.
역주2 秦二世 : 기원전 230~기원전 207(재위 기원전 210~기원전 207). 秦 始皇의 公子로 이름은 胡亥이다. 始皇 사후에 승상 李斯와 환관 趙高에 의해 황제로 옹립되었다. 秦 二世 3년(기원전 207) 8월에 劉邦이 군대를 이끌고 關中으로 들어오자 당시 승상이었던 조고의 압박을 받고 자살하였다.
역주3 趙高 : ?~기원전 207. 본래 秦나라 종실의 후손이라고도 하고 趙나라 종실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秦나라 궁궐에 들어와 환관이 되어 中車府令에 임명되었다. 秦 始皇 사후 丞相 李斯와 함께 시황의 遺詔를 위조하여 시황의 公子 胡亥를 二世 황제로 옹립하고 스스로 郞中令이 되었다. 정권을 전횡하였으며 가혹한 정치를 행하였다. 二世 2년(기원전 208)에 이사를 모함하여 죽이고 승상이 되었다. 二世 3년에 이세를 자살시키고 시황의 장자였던 扶蘇의 아들 子嬰을 옹립하였으나 얼마 뒤에 자영에게 피살되었다.
역주4 郞中令 : 관명으로 九卿 중 하나이다. 궁궐의 門戶와 궁궐 안의 侍衛를 관장하였다.
역주5 : 사고본에는 ‘恣’로 되어 있다.
역주6 沙丘之謀 : 趙高와 李斯가 함께 모의하여 公子 胡亥를 황제로 옹립하고 태자 扶蘇를 자살시킨 政變을 이른다. ‘沙丘’는 巨鹿郡 邑名으로, 지금의 河北省 廣宗縣 서북쪽에 있었다. 秦 始皇이 즉위 37년(기원전 210) 巡狩 도중에 병이 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곳이다. 시황은 사구에 이르러 위독해지자, 변경에 나가 있던 태자 扶蘇로 하여금 수도 咸陽으로 돌아와 자신의 장례를 치르도록 하라는 내용의 遺詔를 부소에게 전하라고 한 뒤 붕어하였다. 그러나 이 遺詔를 받은 환관 조고는 승상 李斯와 함께 시황제를 호종했던 18번째 공자 호해를 설득하여 제위를 찬탈할 음모를 꾸몄다. 그리하여 시황의 죽음을 비밀에 부치고 遺詔를 위조하여 호해를 태자로 삼고 부소에게는 자결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부소가 위조된 조서를 받고 즉시 자결하자 조고 등은 함양에 돌아온 뒤 發喪하고 호해를 二世 황제로 옹립하였다.
역주7 : 사고본에는 ‘邱’로 되어 있다.
역주8 : 사고본에는 ‘鞠’으로 되어 있다.
역주9 蒙毅 : ?~기원전 210. 秦나라 장수 蒙恬(?~기원전 240)의 아우이다. 始皇 때 上卿에까지 이르렀다. 일찍이 황제의 車馬를 관장하는 中車府令이었던 趙高가 중죄를 짓자 법에 의거하여 조고의 작위를 몰수하고 사형을 언도한 적이 있다. 조고는 가까스로 시황제의 사면을 받아 관작이 회복되었으나 이를 계기로 몽의에게 원한을 품고 胡亥가 즉위하자 몽의를 참소하여 죽였다. 《史記 卷88 蒙恬列傳》
역주10 楚戍……山東 : 중국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농민 반란으로, 陳勝과 吳廣의 난으로 불린다. 진승은 字가 涉으로 지금의 하남성 登封市인 陽城 사람이며, 오광은 字가 叔으로 지금의 하남성 太康縣인 陽夏 사람이다. 秦 二世 원년(기원전 209) 7월에 진승과 오광은 다른 900명과 함께 지금의 北京市 密雲縣 서남쪽에 있는 漁陽의 戍卒로 징발되어 가는 도중 폭우로 인해 정해진 기일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게 되자 이 戍卒들을 이끌고 지금의 안휘성 宿縣 남쪽의 蘄(기)縣에서 봉기하였다. 당시 秦나라 법률에 의하면 기일을 어긴 경우 참수형을 당하기 때문이었다. 이를 기폭제로 하여 사방에서 반란군이 일어났고, 기원전 207년에 진나라는 이들 반란군 중 하나인 項羽와 劉邦에 의해 멸망하였다.

대학연의(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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