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道’는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가는 길이기는 하지만 그 지혜가 이에 못 미치면, 임금은 어질어야 한다는 것과 신하는 공경해야 한다는 것과 자식은 효도해야 한다는 것과 부모는 사랑해야 한다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반드시 어둡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혜가 비록 이에 미친다 할지라도 어짊으로 이를 지키지 못하고, 어짊이 비록 이를 지킨다 할지라도 용기로 끊지 못한다면, 마땅히 행해야 하는 이치에 대해 사욕에 빼앗기기도 하고 이해에 가려지기도 해서
天理를 없애고 人倫을 무너뜨리는 일이 많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행하는 방법은 세 가지이다.[所以行之者三]’라고 말한 것입니다.
原注
덕은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가진 것이기는 하지만, 억지로 노력하기도 하고 거짓으로 꾸며서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지혜가 術數에서 발현되기도 하고, 어짊이 원칙 없는 관용으로 흐르기도 하며, 용기가 지나치게 强暴하게 되기도 하여 덕이 본래의 덕이 아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를 행하는 것은 반드시 성실함에 뿌리를 두어야 하니, ‘하나[一]’라는 것은 ‘성실함[誠]’을 말합니다. 세 가지가 모두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것을 일러 ‘성실함’이라고 합니다.
덕이 성실함에 이르면 이것을 가지고 임금의 직분을 행할 때 반드시 임금의 도리를 다하게 되고, 이것을 가지고 신하의 직분을 행할 때 반드시 신하의 도리를 다하게 되며, 부부‧형제‧붕우 사이에 처했을 때 그 도리를 다하지 않음이 없게 됩니다.
漢 高祖가 嬖妾에 빠져 人彘의 禍를 일으키는 빌미를 주었으니, 사욕이 그 지혜를 가렸기 때문입니다. 晉 武帝가 어버이의 명을 어기고 아우에 대한 사랑을 손상시켰으니, 참소가 그 어짊을 해쳤기 때문입니다.
唐 太宗이 태자 李承乾을 폐하고 李治를 태자로 세울 때 하마터면 결단을 내리지 못할 뻔하였으니, 사랑이 그 용기를 잡아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임금이 이 세 가지 덕 중에 하나라도 결여되어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라도 성실함에서 나오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