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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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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12-10-나(按)
按 王子墊者 必當時國君之子 天子‧諸侯之子其未命者 皆曰士
觀其所問與孟子所告則其人 必有志者也 殺一無罪則非仁이요 非其有取之則非義
方是時 天下之戰國이라 爭地以戰 殺人盈野하며 爭城以戰 殺人盈城하니 其戮及無罪者 衆矣
不仁之甚也 侵人土疆하며 奪人寶貨하니 非其有而取之者 衆矣 不義之甚也
原注
然當時之君 於爲此하여 未必知其爲不仁‧不義也 故孟子 斥而言之하사 使以不仁爲戒而所居 常在乎仁하며
以不義爲戒而所由 常在於義케하시니 如此則大人之事
孟子此言 所以救橫流之禍하며 全生民之命者 其功 豈少哉리오 爲人君者 當味斯言以自警也니이다


原注
12-10-나(按)
[臣按] 王子墊은 필시 당시 國君의 아들이었을 것이니, 천자와 제후의 아들 중에 아직 命을 받지 못한 사람을 모두 ‘士’라고 합니다.
그가 질문한 내용과 맹자가 일러준 내용을 보면, 그는 필시 뜻이 있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자를 죽인다면 仁이 아니며 자신의 소유가 아닌데도 취한다면 義가 아닙니다.
이때 천하에는 서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나라가 일곱이었습니다. 땅을 다투느라 싸워서 사람을 죽여 그 시신이 들에 가득하고, 城을 다투느라 사람을 죽여 그 시신이 城에 가득하였으니, 죄 없는 자까지 살육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것은 不仁함이 심한 것이었습니다. 남의 영토를 침략하고 남의 寶貨를 빼앗았으니, 자신의 소유가 아닌데도 취한 것이 많았습니다. 이것은 不義함이 심한 것이었습니다.
原注
그러나 당시의 임금들은 이런 짓을 하는 데 익숙하여 이것이 不仁과 不義가 된다는 것을 반드시 안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맹자가 이를 지적하여 말함으로써 그 不仁함을 경계하여 거하는 곳이 항상 仁에 있도록 한 것이며,
그 不義함을 경계하여 가는 길이 항상 義에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大人의 일이 갖추어진 것입니다.
맹자의 이 말은 범람하는 禍를 구한 것이며 生民의 목숨을 온전히 한 것이니, 그 공이 어찌 적겠습니까. 임금이 된 자는 마땅히 이 말을 음미하여 스스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역주
역주1 : 대전본에는 ‘忍’으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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