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22-13-나(안按)
[신안臣按] 중산왕이 저주했다고 한 장유張由의 참소는 그저 어명을 받들고 갔다가 멋대로 이탈한 죄를 스스로 해명하고자 해서 행한 것일 뿐입니다. 만약 애제哀帝가 외조外朝의 신하들 가운데 대체大體를 아는 사람을 보내어 신문하게 했더라면 그 무함이 즉각 드러났을 것인데,
부태후傅太后가 도리어 묵은 원한을 가지고 의도를 담아 지시하여 그 옥사獄事를 만들어서 풍씨馮氏 집안으로 하여금 무고하게 죽은 이가 17명이나 되게 하였고, 무고를 한 사람이 마침내 후侯에 봉해지는 상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이 당시에 한漢나라의 국운이 거의 망해갔으므로 황제의 덕이 부진하고 황태후가 사심私心으로 제후왕諸侯王의 조모와 어진 외척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부씨傅氏 가문이 도리어 스스로 그 화가 자기 쪽에게 미쳤습니다. “하늘에는 분명한 도가 있어서 그 의리가 분명히 보였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반고班固가 평한 말은 오늘날에 와서 읽어보아도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