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17-2-나(
안按)
[
신안臣按] 《춘추좌씨전》에
안자晏子가
경공景公에게 대답한 내용이 실려 있는데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진씨陳氏가 비록 큰 덕은 없으나 백성들에게 베푸는 것이 있어서
注+전씨田氏는 본래 진陳에서 나왔기 때문에 진씨陳氏라고도 한다. 두豆‧
구區‧
부釜‧
종鍾과 같은 몇 가지
양기量器를 가지고
공세公稅를 징수할 때에는 적게 받고 백성들에게 베풀 때에는 후하게 주는데,
임금께서는 많이 걷으시고 진씨는 후하게 베푸니 백성들이 진씨에게 귀의하였습니다. 임금의 후대가 만약 조금 태만해지고 진씨가 망하지 않으면 나라는 진씨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경공이 말하기를 “좋은 말이다. 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니, 안자가 대답하기를 “오로지 예禮만이 그러한 사태를 막을 수 있습니다. 예에 따르면, 대부 집안에서 베푸는 것이 국인國人에까지 미쳐서는 안 되며 대부가 공가公家에 돌아갈 이익을 거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였습니다.
경공이 말하기를 “좋은 말이다. 나는 못하겠지만.” 이라고 하였으니, 《사기》에서 안자가 간하였으나 경공이 듣지 않았다고 한 것이 이것입니다.
原注
전씨田氏의 초기에는 작은 은혜를 국인國人에게 베풀었던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경공이 안자의 말에 따라 군신 상하의 예를 천명闡明하여 은혜를 베푸는 것이 위에서 나오게 하고 아래에서 사사롭게 나올 수 없게 하며,
작록과 권세가 위로 돌아가게 하고 아래에서 제멋대로 할 수 없게 했더라면, 분의分義가 분명해지고 민심은 한 곳으로 귀결되었을 것이니, 100개의 전씨田氏라 하더라도 어찌 나라를 훔칠 수 있었겠습니까.
경공景公이 마침내 그 말을 훌륭하게 여겼으나 쓰지 못하여 조정에서는 많이 거두어들이고 전씨는 후하게 베풀었으니, 이는 자신의 백성들을 몰아 전씨에게 귀의하게 한 것입니다.
경공이 죽고 나자 이에 전기는 군주가 어리고 나라가 어수선한 때를 이용하여 임금을 폐위하고 세우는 권한을 제멋대로 할 수 있게 되어 나라의 대권이 그의 수중에 있게 되었습니다.
전걸田乞가 죽고 전항이 그 지위를 이어받게 되자 시혜施惠를 전단專斷하여 상을 내렸을 뿐만 아니라 또 형벌을 전단하여 벌을 내렸습니다.
이에 임금을 시해하였음에도 감히 성토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세신世臣과 공족公族들을 차례로 멸하였는데도 감히 따지는 사람이 없었으니 두 세대를 지나 마침내 제나라를 차지한 것도 늦었다고 하겠습니다.
原注
《주역》에 이르기를,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자식이 부모를 시해하는 것은 갑자기 발생하는 변고가 아니라 그 연유한 것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분변하기를 일찌감치 하지 않은 데에서 말미암은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전씨의 화란이 경공景公 때에는 그래도 손쓸 수 있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는 손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때 도모하지 못하고 일찌감치 분변하지 못하여 찬탈의 형세가 이미 이루어진 뒤에는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한漢나라 때 사람이 말하기를, “권신이 대가 바뀌도록 이어지면 위태롭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국정을 전단한 지 오래되면 그 권력을 거두어들일 수 없으며 그 세력을 제압할 수 없어서 반드시 위태로움에 이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전기 이후에 전항이 마침내 기존의
제齊나라를 대신하여 차지하고
계숙季宿 이후에
계의여季意如가 또한
노魯나라의 국정을 전단하였으며,
注+계무자季武子는 이름이 숙宿이다. 그 아들 계평자季平子는 이름이 의여意如로 로 소공魯 昭公을 축출하였다.
왕봉王鳳‧
왕망王莽‧
조조曹操‧
조비曹丕가
한漢나라에 대해서와
注+왕봉王鳳이 국정을 전단하고 나서 다섯 후侯를 거쳐 조카 왕망王莽에 이르러 제위를 찬탈하였다. 조조曹操가 국정을 전단하고 나서 아들 조비曹丕에 이르러 제위를 찬탈하니, 이 사람이 위 문제魏 文帝이다. 사마의司馬懿‧
사마사司馬師‧
사마소司馬昭‧
사마염司馬炎이
위魏나라에 대해서
注+사마의司馬懿가 처음 국정을 전단하였고 그의 아들 사마사司馬師가 사마의를 계승하였다. 사마사의 동생 사마소司馬昭가 마침내 진왕晉王에 봉해지고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司馬炎이 제위를 찬탈하니, 바로 진 무제晉 武帝이다. 모두 점진적으로 나라를 빼앗은 것이니,
본말을 궁구해보면 일찌감치 분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임금이 어찌 하루라도 그 권력을 잃어서야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