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8-11-나(按)
[臣按] 范祖禹(1041~1098)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周 文王은 아버지 王季에게 효성스러웠기 때문에 형제에게 우애하였고, 아내인 大姒와 화목하게 지냈기 때문에 자손에게 자애로웠다.
그리하여 그 집안과 나라에까지 미쳐서 심지어는 조수와 초목까지도 그 은택을 입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이는 이 마음을 미루어 넓혀나간 것뿐이다.
선왕 중에 효성스러우면서도 우애하지 않은 분은 없었으며, 우애하면서도 자애롭지 않은 분은 없었는데, 후세에 와서 역대 왕들이 혹 여기에 능하면 저기에 능하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재능이 성현이 되기에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마음을 들어 저기에 놓지 못해서일 뿐이다. 明皇(唐 玄宗)이 藩王으로서 공을 세우자, 李成器는 적장자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능히 자신의 지위를 사양하여 내주었다.
이 때문에 명황의 마음이 형제에게 돈독했던 것이니, 이는 이성기의 행실이 그 우애하는 마음을 길러준 것이다. 그러므로 명황이 그 타고난 본성을 온전히 할 수 있어서 참소나 이간하는 말이 들어갈 길이 없었던 것이다.
아, 진실로 이 마음을 미루어 채울 수 있다면 仁을 이루 다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아비가 되어서는 참소 때문에 아들을 죽이며,
注+開元 말에 명황(현종)은 武惠妃의 참소로 태자 李瑛, 鄂王 李瑤, 光王 李琚를 폐하여 모두 서인으로 삼았다가 얼마 뒤에 賜死하였다. 남편이 되어서는 총애하는 여자 때문에 아내를 내쫓으며,
注+명황은 武惠妃를 총애하여 王황후를 폐하였다.
임금이 되어서는 죽일 죄가 아닌데도 신하를 죽였으니,
注+명황은 어사 周子諒을 죽였다. 이는 모두 이 仁을 채워나가지 못한 것이다. 진실로 이 仁을 채워나가지 못한다면 善을 행하는 것이 어찌 이로움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나오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