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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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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18-19-나(按)
按 朱异 以善伺上意 爲阿諛取寵倖하여 至謀國大事 不論是非可否하고 亦惟上意是覘하니
侯景之降 納之 非策也어늘 帝意在於得中原之土 故勸而成之하고
正月乙卯之夢 帝嘗以語异 旣爲諂語以媚帝矣러니 及景之來 果云來降之謀 決於乙卯라하니
敎之使言하여 以符合上意也어늘 不察而神之하니하여 使懵若是邪
原注
夫景之叛魏 由其與高澄有隙也 旣納景之降則不當通澄之使 雖三尺라도 猶能知之而异 復揣帝意 在於得正陽之還이라
故又勸而成之하니 通澄之和 趣景之反也 异本儒生이니 豈蠢然無識者리오마는 其爲此也富貴耳
故一切惟主意是奉而不暇爲國忠謀어늘 梁武 甘其佞‧樂其詐하여 侯景之 朝野 皆歸罪异而帝 獨不知之하여
方且哀憐於旣死之餘而寵贈以非常之典하니 殆謂此邪인저
原注
夫人君 欲觀其臣之邪正인대 大略有二道焉하니
謀議 徇國不徇君 正人也 反是則邪矣 處身 徇義不徇利 正人也 反是則邪矣
爲大臣而導諛黷貨하여 兼有二罪어늘 梁武 一弗之察하니 其致禍亂也 宜哉로소이다
以上 論憸邪罔上之情하니라


原注
18-19-나()
[신안臣按] 주이朱异는 군주의 뜻을 잘 살피는 것으로 비위를 맞추고 아첨해서 총애를 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나라의 대사를 도모할 때 이르러서도 시비是非가부可否를 따지지 않고 마찬가지로 오직 군주의 뜻만 엿보았습니다.
후경侯景내항來降할 때 그를 받아들이는 것은 올바른 계책이 아니었지만 주이는 무제武帝의 뜻이 중원의 영토를 얻는 데에 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였기 때문에 후경을 받아들이도록 권하여 무제의 뜻을 이루어주었던 것입니다.
또한 정월 을묘일의 꿈을 무제가 일찍이 주이에게 말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주이가 이미 아첨하는 말을 하여 무제에게 환심을 샀었는데, 후경의 사자使者가 와서는 과연 내항할 계획을 을묘일에 결단하겠다고 하였으니,
이는 주이가 그렇게 말하도록 시켜서 무제의 뜻에 부합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무제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신기하게 여겼으니, 어찌 하늘이 그 거울을 빼앗아 무제를 이처럼 어리석게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原注
후경侯景동위東魏를 배반한 것은 고징高澄과 사이가 벌어진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미 후경의 내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고징의 사자使者를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오히려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주이朱异는 다시 무제武帝의 뜻이 정양후正陽侯의 귀환을 성사시키는 데 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였기 때문에
또 무제에게 권하여 무제의 뜻을 이루어주었으니, 고징의 화친을 받아들인 이 일은 후경의 반란을 재촉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이는 본래 유생儒生이니 어찌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자였겠습니까. 그런데도 그가 이와 같은 행동을 했던 것은 단지 부귀를 바라서일 뿐이었습니다.
권력을 전횡한 30년 동안 널리 뇌물을 받아서 전지와 정원‧주택‧희첩姬妾완호물玩好物이 당시에 최고였으니 벌벌 떨며 오직 이를 잃을까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일체를 모두 군주의 뜻만 받들어 나라를 위해 충성스러운 계책을 낼 겨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무제는 그의 아첨을 달콤하게 여기고 그의 속임을 즐거워하여 후경이 닥쳤을 때 조야朝野가 모두 주이에게 죄를 돌렸는데도 무제는 홀로 이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죽은 뒤에 이를 슬퍼하고 안타까워하여 특별히 상례常禮를 뛰어넘는 은전을 베풀었으니, 어지러운 세상의 군주가 저마다 자기 신하를 어질게 여긴다는 것은 아마도 이를 말할 것입니다.
原注
무릇 군주가 자기 신하가 간사한지 올바른지를 보고자 한다면 대략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계책 내는 것을 나라를 따르고 군주를 따르지 않는 이런 사람이 올바른 사람이니, 이와 반대로 한다면 간사한 자입니다. 처신을 의를 따르고 이익을 따르지 않는 이런 사람이 올바른 사람이니, 이와 반대로 한다면 간사한 자입니다.
주이朱异가 대신의 신분으로 무제의 비위를 맞추어서 아첨하고 재물을 탐하여 뇌물을 받아서 두 가지 죄를 모두 가지고 있는데도 무제가 끝내 이를 살피지 못했으니, 화란을 초래했던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상은 간신이 임금을 속이는 실상을 논한 것이다.


역주
역주1 : 대전본에는 ‘專’, 사고본에는 ‘察’로 되어 있다.
역주2 使 : 대전본에는 ‘侯’로 되어 있으나, 오자이다.
역주3 : 대전본에는 ‘景’으로 되어 있으나, 오자이다.
역주4 天奪其鑑 : ‘鑑’은 스스로 자신을 비추어보는 것으로, 여기에서는 길흉을 아는 통찰력을 비유한다. 《春秋左氏傳》 僖公 2년(기원전 658)에 晉나라 卜偃이 “괵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 下陽을 잃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또 전쟁하여 공을 세웠으니, 이는 하늘이 그의 거울을 빼앗아 그의 죄악을 더하게 한 것이다.[虢必亡矣 亡下陽不懼 而又有功 是天奪之鑑]”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5 : 대전본‧사고본에는 ‘焉’으로 되어 있다.
역주6 童子 : 대전본에는 ‘之童’으로 되어 있다.
역주7 : 대전본‧사고본에는 이 뒤에 ‘保’가 있다.
역주8 用事……一時 : 18-17-가 참조.
역주9 : 대전본‧사고본에는 ‘唯’로 되어 있다.
역주10 : 대전본‧사고본에는 ‘禍’로 되어 있다.
역주11 臨亂……其臣 : 18-11-가 참조.

대학연의(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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