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齊尙書
僕射(우복야)
이 勢傾朝野
라 咸陽王
이 惡之
하여 하니 珽
이 聞而怨之
러니
의 子
가 常求牧田於
어늘 光
이 又爭之不與
하니 由是祖‧穆
이 皆怨之
하더라
光이 性節儉하여 不好聲色하며 罕接賓客하며 杜絶饋餉하며 不貪權勢하고 每朝廷會議에 常獨後言이요 言輒合理러라
行兵에 營舍未定이면 終不入幕하고 身不脫介冑하여 常爲士卒先하니 結髮從軍하여 未嘗敗北라 深爲鄰敵所憚이러니
刺史
이 密爲謠言曰
이 飛上天
이요 明月
이 照長安
注+光, 字明月.이라하고
又曰 高山
이 不
自崩
注+高, 齊姓也.이요 이 不扶自擧
라하여 令諜人傳之於鄴
하니 鄴中小兒
가 歌之於路
어늘
珽이 因續之曰 盲老公背受大斧요 饒舌老母不得語라하여 使其妻兄鄭道蓋로 奏之한대
帝가 以問珽하시니 珽與陸令萱이 皆曰 實聞有之니이다
珽
이 因解之曰 百升者
는 斛也
요 니 與國同憂
요 饒舌老母
는 似謂女侍中陸氏也
로소이다
且斛律
이 累世大將
이라 明月
이 聲震
하고 하니 謠言
이 甚可畏也
니이다
血流於地
어늘 剗之
호대 終不滅
이러라 가 聞光死
하고 爲之大赦
러니 하다
23-4-가
북제北齊의 상서우복야 조정尙書右僕射 祖珽이 권세가 조야朝野를 뒤흔들었다. 함양왕 곡률광咸陽王 斛律光이 그를 미워하여 그를 보면 반드시 멀리에서 욕을 하자 조정이 듣고서 곡률광을 원망하였다.
여시중 육령훤女侍中 陸令萱의 아들 목제파穆提婆가 일찍이 후주後主(고위高緯)에게 목장을 청하였는데, 곡률광이 또 이를 간쟁하여 주지 않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조정과 목제파가 모두 곡률광을 원망하였다.
곡률광斛律光은 천성이 검소하여 가무歌舞와 여색女色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빈객賓客을 만나는 일이 드물었고 음식 대접을 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았으며 권세를 탐하지 않았다. 매번 조정에서 회의할 때에는 늘 혼자서 나중에 말하였고 말을 하면 번번이 이치에 맞았다.
군대를 이끌 때에는 군영이 정해지지 않으면 끝내 막사에 들어가지 않고 몸에서 갑옷과 투구를 벗지 않아서 항상 사졸士卒의 솔선수범이 되었다. 어렸을 때 군대에 들어와 일찍이 패배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웃나라의 적에게는 매우 두려운 대상이었다.
북주北周의
훈주자사 위효관勳州刺史 韋孝寬이 남몰래
요언謠言을 지어 “
백승百升이 높은 하늘을 날고,
명월明月이
장안長安을 비추네.”
注+곡률광斛律光은 자가 명월明月이다.라고 하고,
또 “
고산高山은 밀지 않아도 절로 무너지고,
注+‘고高’는 북제北齊의 국성國姓이다. 곡목槲木은 붙들지 않아도 절로 우뚝하네.”라고 하여 첩자에게 이것을
업鄴에 퍼뜨리게 하자, 업의 어린아이들이 길에서 이것을 노래하였다.
북제北齊의 조정祖珽이 이로 인해 그 뒤를 이어서 짓기를 “눈먼 노공老公은 등에 큰 도끼를 받고, 말 많은 노모老母는 말을 하지 못하네.”라고 하여, 그 매형인 정도개鄭道蓋로 하여금 이를 북제의 후주後主(고위高緯)에게 아뢰게 하였다.
후주가 이 노래에 대해 조정에게 묻자, 조정과 육령훤陸令萱이 모두 함께 “참으로 그런 노래를 들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조정이 이로 인해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백승百升은 곡斛이고 눈먼 노공老公은 소신을 이르니 나라와 근심을 같이한다는 뜻이며, 말 많은 노모老母는 여시중 육씨女侍中 陸氏(육령훤陸令萱)를 말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곡률광斛律光은 대를 이어 대장이 된 자입니다. 명월의 명성이 관서關西에 진동하고 명월의 위엄이 돌궐突厥에 행해지니 요언이 매우 두렵습니다.” 마침내 곡률광을 불러 들어오게 해서 죽였다.
곡률광의 피가 땅에 흘렀는데, 이 핏자국을 깎아냈으나 흔적이 끝내 없어지지 않았다. 북주北周의 무제武帝가 곡률광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대사령大赦令을 내렸다. 6년 뒤에 북주가 북제를 멸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