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臣按】 周敦頤의 말이 전대 聖人과 실로 서로 부합합니다.
마음이 성실하지 않으면 사사로운 뜻과 부정한 생각이 분분히 함께 일어나게 되니, 자신이 수양되기를 바라더라도 될 수 있겠습니까.
친척이 화목하지 않으면 가정이 반목하여 정이 끊어지니, 집안이 바르게 되기를 바라더라도 될 수 있겠습니까.
집안을 다스리는 어려움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보다 심한 까닭은 집안에서는 은혜를 숭상하니 쉽게 의리를 가리기 때문입니다.
原注
세상 사람들은 참으로 바깥을 다스리는 데에 힘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집안에 있어서는 妻妾에 대한 私情에 미혹되기도 하고 骨肉에 대한 사랑에 끌리기도 하여 능히 바른 도리를 가지고 자신을 단속하는 자가 드뭅니다.
漢 高祖는 秦나라를 멸망시키고 項羽를 토멸할 수 있었지만 戚姬와 劉如意에 대한 총애를 끊지 못하였으며, 唐 太宗은 고립무원의 隋나라를 취하고 여러 도적을 물리칠 수 있었으나 가정에서의 부끄러운 덕을 도리어 면치 못하였습니다.
이는 소원하면 公道가 행해지기 쉽고 친하면 私情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니, 이것이 어려운 까닭입니다.
그 어려운 것을 우선하지 않으면 그 쉬운 것을 잘하는 사람은 있지 않았습니다.
漢나라와 唐나라의 임금들이 근본을 세우고 법칙을 만든 것이 이미 이러하였으니, 그들이 천하를 다스렸던 것이 三代에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해 무슨 괴이하게 여길 것이 있겠습니까.
原注
대체로 여자의 陰柔한 성질은 투기하고 음험하고 치우치지 않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러므로 두 여자가 함께 살면 시기와 이간질이 쉽게 생기는 법입니다.
堯임금이 舜을 시험하고자 굳이 두 딸을 下嫁시킨 것은, 두 여자에 잘 대처할 수 있으면 천하에 잘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舜 자신이 바르게 되어 집안에서 모범이 된 것이 이와 같았으므로 堯임금이 천하를 禪讓하면서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이 바른 까닭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성실함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不善의 싹이 안에서 동하면 빨리 그것을 되돌리는 것일 따름입니다.
성실함이란 참된 天理요 허위란 거짓된 人爲이니, 허위가 제거되면 성실함이 보존됩니다.
성실함이 보존되면 자신이 바르게 되고 자신이 바르게 되면 집안이 다스려지니, 이를 천하에 미루어 나감에 천하를 손바닥에서 운용하는 것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