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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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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10-9-나(按)
按 人臣之義 以忠直爲本이라 故上取孔‧孟之言하고 下迄汲黯之事하여
欲人君으로 知盡言極論者 乃所以爲尊君이며 爲親上이니 不惟容之 而又當用之也
從諛承意者 乃所以爲欺君이며 爲嫚上이니 不惟察之 而又當遠之也
汲黯之直 武帝以爲近於古社稷臣이로되 而卒不能用하시고 乃寵任始終焉하시니
蓋帝之心 以佞邪 爲適己而不知其益己之疾也이요 以忠直으로 爲拂己而不知其成己之德也
故著此하여 以爲來者之戒하노이다
以上 論天理人倫之正 []


原注
10-9-나(按)
[臣按] 신하의 의리는 충직함을 근본으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위로는 공자와 맹자의 말을 인용하고 아래로는 급암의 고사를 언급하여,
임금으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점을 알게 하려고 합니다. 할 말을 다하여 낱낱이 논하는 것이 바로 임금을 높이는 것이며 윗사람을 친히 하는 것이니, 이를 용납할 뿐만 아니라 또 수용해야만 한다는 것이요,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것은 바로 임금을 속이는 것이고 윗사람을 모독하는 것이니, 이를 살펴야 할 뿐만 아니라 또 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급암의 우직함을, 무제는 옛날의 社稷之臣에 가깝다고 말했으면서도 끝내 급암의 말을 수용하지 않았고 公孫弘의 무리를 마침내 시종일관 총애하고 신임하였습니다.
이는 무제의 마음에 아첨과 간사한 언동을 자신과 맞는다고 생각하여 그것이 자신의 병폐를 더한다는 것은 몰랐던 것이며, 충직한 언동을 자신과 거슬린다고 생각하여 그것이 자신의 덕을 이루어준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신이 그러므로 이를 기록하여 후세 사람들의 경계로 삼는 것입니다.
이상은 천리와 인륜에 임하는 올바른 처신을 논한 네 번째이다.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충성]


역주
역주1 公孫弘 : 기원전 200~기원전 121. 자는 季‧次卿으로, 菑川 薛縣 사람이다. 40세 즈음 《春秋公羊傳》을 익혔는데, 武帝 建元 원년(기원전 140)에 賢良에 추천되어 博士에 올랐다가 匈奴와 관련된 일에 휘말려 관직에서 물러났다. 元光 5년(기원전 130)에 賢良對策에 박사가 되고 內史‧御史大夫를 역임하였다. 極諫을 하기보다는 무제의 뜻을 살펴 의사를 표하고, 儒術을 정치에 알맞게 응용하여 무제의 신임을 얻었다. 元朔 5년(기원전 124)에 승상이 되고 平津侯에 봉해졌다.
역주2 : 사고본에는 ‘七’로 되어 있으나, 오자이다.
역주3 臣事君之忠 : 사고본에는 없다.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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