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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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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卽位 爲相하여 務崇寬大 故當時政聲 藹然하여 以爲有이러니
20-7-가
德宗이 갓 즉위했을 때에는 崔祐甫가 재상으로 있으면서 관대한 정사를 힘써 숭상하였기 때문에 당시 善政의 명성이 자자하여 貞觀의 風이 있다고 하였다.
及杞爲相 知上性多忌하고 因以疑似 離間群臣하여 始勸上以嚴刻御下하니 中外失望하더라
盧杞가 재상이 되자, 노기는 덕종의 품성이 시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이를 이용해 혐의가 있다는 것으로 신하들을 이간질하였다. 그리하여 비로소 덕종에게 가혹한 방법으로 신하들을 다스리도록 권하자 조정 안팎에서 실망하였다.
역주
역주1 20-7-가 : 《資治通鑑》 권227 〈唐紀43 德宗2〉 建中 3년(782) 4월 조에 보인다.
역주2 崔祐甫 : 721~780. 당나라 때의 재상이다. 자는 貽孫이며, 지금의 섬서성 西安市인 京兆 長安 사람이다. 일찍부터 壽安縣尉, 起居舍人, 司勳員外郞, 御史中丞, 中書舍人 등을 역임하였다. 德宗이 즉위한 뒤 中書侍郞, 同平章事에 임명되었다. 病死하였으며, 사후에 太傅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文貞이다.
역주3 貞觀之風 : ‘貞觀’은 唐 太宗 李世民(599~649, 재위 626~649)이 재위 기간 사용한 연호로, 貞觀之風은 貞觀之治를 가리킨다. 태종은 재위하는 동안 隋나라의 亡國의 교훈을 잊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고 간언을 잘 받아들여 治世를 이루었다. 특히 인재를 등용할 때는 출신의 빈천을 묻지 않고 원한을 따지지 않았으며, 간언을 받아들일 때는 직간을 한 신하들에게 중한 상을 내림으로써 간언을 장려하였다. 또한 均田制와 府兵制을 시행하여 세금을 가볍게 하고 無爲의 정치를 표방하였다.

대학연의(4)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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