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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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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武帝建元元年 董仲舒 曰 春秋 天地之常經이며 古今之通誼也注+春秋公羊傳 “隱元年春王正月”, “何言乎? 大一統也”, 仲舒蓋借此而言, 以明天下道術當統于一.
師異道하며 人異論하여 百家 殊方하여 指意不同이라 是以 上亡以持一統이요 法制 數變이라 下不知所守하나니
臣愚 以爲諸不在之科 孔子之術者 皆絶其道하여 勿使復進하여
之說 滅息然後에사 統紀 可一而法度 可明하여 民知所從矣리이다


13-3-가
漢 武帝 建元 원년(기원전 140)에 董仲舒가 다음과 같은 對策을 올렸다. “《春秋》의 ‘大一統’은 천지의 변치 않는 법칙이며 고금에 통하는 당연한 의리입니다.注+《春秋公羊傳》에서 《春秋》의 ‘隱元年春王正月(隱公 원년 봄 왕 정월)’이라는 구절에 대하여, “어찌하여 ‘王正月’이라고 하였는가? 천하 만물로 하여금 그 시작을 똑같게 하는 것을 크게 여겼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는데, 董仲舒는 이 구절을 빌려 말함으로써 천하의 道術이 마땅히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지금 經師들은 도를 달리하고 사람들은 논의를 달리하여 百家가 방향을 다르게 하여 그 뜻이 같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위에서는 一統을 견지할 기준이 없고, 법과 제도가 자주 변하니 아래에서는 지킬 바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신의 생각으로는, 六藝에 포함되지 않는 과목과 공자의 학술에 들어가지 않은 설들은 모두 그 길을 끊어서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하여
올바르지 않은 설들이 사라지고 없어진 뒤에야 統紀를 하나로 할 수 있으며 법과 제도를 명백하게 할 수 있어서 백성들이 따를 바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역주
역주1 13-3-가 : 《前漢書》 卷56 〈董仲舒傳〉에 보인다. 漢 武帝 建元 원년(기원전 140) 10월에 무제의 策問에 대한 董仲舒(기원전 179~기원전 104)의 세 편의 對策 가운데 하나로 〈擧賢良對策〉이라고 불린다. 당시 무제는 즉위한 뒤 賢良‧文學으로 인재를 선발하도록 명을 내렸는데, 동중서 역시 천거를 받아 무제의 책문에 응한 것이었다. 이 대책을 올린 뒤에 동중서는 江都의 相에 임명되어 무제의 형인 易王 劉非를 섬기게 되었다. 특히 대책에 나오는 大一統‧天人感應‧罷黜百家‧獨尊儒術과 같은 주장들은 이후의 통치 철학에 많은 영향을 준 이론이다. 동중서는 西漢의 今文經學家로, 景帝 때 博士를 역임하였으며 《春秋公羊傳》을 중시하였다. 저서에 《春秋繁露》가 있다.
역주2 對策 : 《說文解字》에 따르면 ‘策’은 ‘상의하다[謀]’라는 뜻으로, 政事나 經義 등에 대해 가설하여 물은 뒤에 응시한 사람들에게 대답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漢 文帝 때 晁錯의 대책에서 시작되어 이후 인재를 선발하는 시험 방식의 하나로 운용되었다. 劉勰에 따르면, ‘일을 탐구하여 자신의 의견을 올리는[探事而獻說]’ 射策과 달리, 對策은 조서에 응하여 ‘정사를 진달하는 것[應詔而陳政]’으로, 여기에서 일등하면 등용이 되었다. 《文體明辨序說 策》
역주3 大一統 : 何休의 주에 “統은 ‘시작’이라는 뜻이니, 총괄한다는 말이다. 天王은 처음으로 天命을 받아 제도를 개혁하고 천하에 政敎를 펴서 公侯에서부터 庶人에 이르기까지 산천에서부터 초목‧곤충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정월에 매어두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에 ‘政敎의 시작’이라고 한 것이다.[統者 始也 總繫之辭 天王者 始受命改制 布政施敎於天下 自公侯至於庶人 自山川至於草木昆蟲 莫不一一繫於正月 故云政敎之始]”라는 내용이 보인다. 《春秋公羊傳注疏 隱公 元年 何休注》
역주4 王正月 : 《春秋公羊傳》의 “‘王’은 누구를 말하는가? 周 文王을 이른다. 어찌하여 먼저 王을 말하고 뒤에 正月을 말하였는가? 왕의 정월이기 때문이다.[王者孰謂 謂文王也 曷爲先言王而後言正月 王正月也]”라는 구절의 ‘王正月’에 대해, 何休는 “위로 왕에게 매둠으로써 王者가 天命을 받아 政敎를 펴고 달을 제정한 것을 알게 한 것이다. 王者는 천명을 받으면 반드시 거처를 옮기고, 正朔을 바로잡고, 복색을 바꾸고, 徽號를 변경하고, 희생을 바꾸고 器械를 다르게 하여 명을 하늘에서 받은 것이지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아님을 밝힌다.[以上繫於王 知王者受命 布政施敎所制月也 王者受命 必徙居處 改正朔 易服色 殊徽號 變犧牲 異器械 明受之於天 不受之於人]”라고 하였다. 《春秋公羊傳注疏 隱公 元年 何休注》
역주5 六藝 : 대체로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첫째는 禮‧樂‧射‧御‧書‧數를 가리키며, 둘째는 儒家의 六經, 즉 《禮》‧《樂》‧《書》‧《詩》‧《易》‧《春秋》를 가리킨다. 《史記》에 따르면 공자는 詩‧書‧禮‧樂으로 가르쳤는데, 제자가 3천 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六藝에 통달한 자는 72명이었다고 한다. 공자는 六藝에 대해, 《禮》는 사람의 행동을 절제시키고, 《樂》은 화목한 마음을 나오게 하며, 《書》는 일을 말하고, 《詩》는 뜻을 통하게 하며, 《易》은 신묘하게 변화시키고, 《春秋》는 의리를 밝힌다고 하였다. 《周禮 地官 大司徒》 《史記 卷47 孔子世家, 卷126 滑稽列傳》
역주6 : 대전본에는 ‘闢’으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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