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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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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列於하니 其諫 犯主之顔色이러라 方招儒者注+上, 漢武帝也.러시니
注+言欲施仁義也.하노라 對曰 陛下 內多而外施仁義하시니 何欲效唐‧虞之治乎리잇고
怒變色而罷朝하시니 公卿 皆爲黯懼러니 退謂人曰 甚矣 汲黯之戇也注+戇, 謂愚直也. 群臣 或數黯注+數, 責也, 謂責其太直.한대
曰 天子 置公卿輔弼之臣하시니 寧令從諛承意하여 陷主於不誼乎 且已在其位하니 縱愛身이나 辱朝廷何
이어늘 爲請告注+嚴助亦時近.한대 曰 汲黯 何如人也
曰 使黯으로 任職居官 亡以瘉人注+瘉, 與愈同, 勝也.이어니와 然至其輔少主守成 雖自謂賁‧育이라도 弗能奪也注+孟賁‧夏育, 古勇士也.니이다
曰 然하다 古有하니 如汲黯 近之矣로다


10-9-가
漢나라 汲黯이 主爵都尉가 되어 九卿의 반열에 올랐는데, 그가 간언할 때 임금에게 犯顔을 하였다. 상이 한창 經學에 밝은 儒者들을 초치하고 있었다.注+‘上’은 漢 武帝이다.
상이 말하였다. “나는 이러이러하고 싶다.”注+인의를 베풀고자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급암이 대답하였다. “폐하께서 속으로는 욕망이 많으심에도 겉으로는 인의를 베푸시니, 어떻게 요임금과 순임금의 치세를 본받으시려는 것입니까.”
상이 진노하여 안색이 변한 채 조회를 끝내자, 公卿들은 모두 급암을 위하여 걱정하였다. 상이 물러나와 다른 사람에게 말하였다. “심하구나! 급암의 우직함이여!”注+‘戇’은 우직하다는 말이다. 신하들 중에 어떤 사람이 급암을 책망하자,注+‘數’는 ‘책망하다’라는 뜻이니, 급암이 너무 곧다고 책망한 것을 이른다.
급암이 말하였다. “천자가 公卿과 같은 보필하는 신하를 두니, 어찌 아첨하고 비위를 맞춰 임금을 不義에 빠뜨리게 하려고 그러겠는가. 게다가 이미 보필하는 자리에 있으니, 비록 내 몸을 아낀다 해도 어찌 조정을 욕되게 하겠는가.”
급암이 병이 나자 嚴助가 그를 대신하여 휴가를 청하였는데,注+嚴助 역시 당시 近臣이었다. 상이 말하였다. “급암은 어떤 사람인가?”
엄조가 말하였다. “급암이 관직을 맡고 있을 때에는 남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注+‘瘉’는 ‘愈’와 같으니, ‘낫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어린 군주를 보필하여 王業을 지켜나가는 데 있어서는 제아무리 孟賁과 夏育을 자처한다 하더라도 그 강직함을 빼앗지는 못할 것입니다.”注+‘賁‧育’은 ‘孟賁’과 ‘夏育’이니, 고대의 용사이다.
상이 말하였다. “그렇다. 옛날에는 社稷之臣이 있었는데, 급암 같은 사람이 그에 가까울 것이다.”


역주
역주1 10-9-가 : 《史記》 卷120 〈汲鄭列傳〉과 《漢書》 卷50 〈張馮汲鄭傳〉에 보인다. 荀悅의 《漢紀》에 따르면, 이 기사는 建元 6年(기원전 135)의 일로, 당시 武帝의 나이는 22세였다. 《漢紀 孝武皇帝紀 卷1》
역주2 汲黯 : ?~기원전 109. 자는 長孺로, 濮陽 사람이다. 直諫을 좋아하고 주저 없이 犯顔을 했는데, 武帝가 겉으로나마 仁義를 베풀었던 것도 그의 힘이 컸다. 승상 張湯과 어사대부 公孫弘 등에 대해서는 법에 의존하고 천자에게 아첨하는 무리라고 비난하였다. 黃老學을 배워 無爲의 정치를 주장하였으나 무제는 수용하지 않았다. 훗날 淮陽太守로 재직하던 중 죽었다. 《曾維華 외, 西漢名臣汲黯卒年考, 中華文史論叢 97期, 上海師範大學人文學院, 2010, 381~382쪽》
역주3 主爵都尉 : 漢 景帝 中元 원년(기원전 144)에 主爵中尉를 고친 이름으로, 列侯에 대한 일을 관장하였다. 《漢書 卷19上 百官公卿表》
역주4 九卿 : 《周禮》의 天官冢宰‧地官司徒‧春官宗伯‧夏官司馬‧秋官司寇‧冬官司空의 六卿과 少師‧少傅‧少保를 합친 데에서 유래하였다. 漢나라 때에는 통상적으로 奉常‧郞中令‧太僕‧廷尉‧典客‧宗正‧治粟內史‧少府‧衛尉‧中尉‧三輔長官 등 中二千石에 해당하는 중앙의 고위 관료들을 구경이라고 하였다. 아홉 개의 관직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기에 ‘列卿’이라고도 불렸다. 《中國歷史大辭典 九卿》
역주5 文學 : 顔師古는 《漢書》 〈西域傳〉에 보이는 ‘爲文學者’를 ‘경서를 배운 사람[學經書之人]’으로 풀이하였다. 이것으로 보면 ‘문학’은 經學을 말한다. 한 무제는 즉위 초부터 賢良方正이라는 과목으로 ‘문학’에 능한 儒生들을 초치하여 三公 등과 같은 고위직에 등용하였다. 《漢書 卷96下 西域傳 顔師古注》 《史記 卷121 儒林列傳》
역주6 上曰吾欲云云 : 荀悅의 《漢記》에 따르면, 무제는 “나는 훌륭한 정사를 일으켜 요임금과 순임금을 본받고자 하는데, 어떠한가?[吾欲興政治法堯舜 何如]”라고 하였다. 《漢紀 孝武皇帝紀 卷1》
역주7 : 대전본에는 ‘慾’으로 되어 있다.
역주8 : 대전본에는 ‘柰’로 되어 있다.
역주9 : 사고본에는 ‘奈’로 되어 있다.
역주10 嚴助 : ?~기원전 122. 會稽 吳縣 사람이다. 원래의 성이 莊이므로 前漢 때 지어진 《史記》에는 ‘莊助’로 되어 있으나, 後漢 때 지어진 《前漢書》에서는 明帝 劉莊의 諱를 피하여 성이 嚴으로 바뀌었다. 賢良對策에 천거되었는데 武帝가 근신으로 발탁하였다. 朱買臣‧司馬相如‧吾丘壽王‧東方朔 등과 함께 무제의 측근이었다.
역주11 : 대전본‧사고본에는 ‘官’으로 되어 있다.
역주12 社稷之臣 : 9-19-나(按) ‘社稷之臣’ 주석 참조.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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