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16-6-나2(안按)
[신안臣按] 무제武帝가 곽광에게 어린 아들(소제昭帝)을 부탁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또 상관걸과 상홍양을 참여하도록 하였으니, 이는 인재를 알아보는 명철함이 고제高帝에 비하면 부끄러움이 있는 것입니다.
상관걸 등은 모두 간사하고 이익을 탐하는 무리이므로 밖으로는 번왕藩王과 결탁하고 안으로는 존귀한 공주와 결탁하였습니다. 소제의 천성이 일찍 이루어지지 않아서 곽광이 충신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감싸주지 못하여 상관걸 등이 득의하게 했더라면 그 재앙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소제가 인재를 알아보는 명철함이 도리어
효무제孝武帝보다 월등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효무제가
연왕燕王이나
광릉왕廣陵王을
注+‘연燕’‧‘광릉廣陵’은 연왕 유단燕王 劉旦과 광릉왕 유서廣陵王 劉胥이다. 후사로 세우지 않고 소제를 세웠으니 이는 자식을 아는 데 밝았던 것이고,
전천추田千秋의 무리에게 후사를 맡기지 않고 곽광에게 맡겼으니 이는 신하를 아는 데 밝았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상관걸 등에서 실책을 범했던 것은 상관걸이 아첨으로 나오고 상홍양이 이익으로 영합했기 때문입니다.
옛 글에 이르기를 “겨를 뿌려 눈에 들어가면 천지사방이 그 때문에 위치를 구별하기 어렵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임금은 반드시 자신의 마음을 먼저 바로잡아 아첨에 미혹되지 않으며 이익에 흔들리지 않은 뒤에야 신하들의 간사함과 올바름을 변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