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文帝時
에 가 以
對策曰
은 臣主
가 俱賢
이라 故合謀相輔
하여 計安天下
하사대 莫不本於人情
하니
人情이 莫不欲壽어늘 三王이 生而不傷也하시고 人情이 莫不欲富어늘 三王이 厚而不困也하시고 人情이 莫不欲安이어늘 三王이 扶而不危也하시고 人情이 莫不欲逸이어늘 三王이 節其力而不盡也하사
其爲法令也가 合於人情而後에 行之하시며 其動衆使民也가 本於人事然後에 爲之하시며 取人以己하시며 内恕及人하사 情之所惡를 不以彊人하시며 情之所欲을 不以禁人하시니
是以
로 天下
가 樂其政․歸其德
하여 望之若父母
하며 從之
流水
하니이다
27-6-가
한漢 문제文帝 때 조조晁錯가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어 책문策問에 다음과 같이 대책對策하였다. “삼대三代의 임금 때에는 신하와 군주가 모두 현명하였기 때문에 지혜를 모아 서로 도와서 천하를 안정시킬 것을 꾀하였는데 인정人情에 근본을 두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인정에 장수長壽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자 삼대의 임금은 백성들의 생명을 보호해주어 다치지 않게 하였고, 인정에 부유함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자 삼대의 임금은 백성들을 풍족하게 해주어 곤궁하지 않게 하였고, 인정에 안정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자 삼대의 임금은 백성들의 질서를 유지해주어 위태롭지 않게 하였고, 인정에 편안함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자 삼대의 임금은 백성들의 힘을 아껴주어 소진되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법령法令을 만든 것은 인정에 부합한 이후에야 시행하였으며, 그 백성들을 동원하고 부리는 것은 인사人事에 근본을 둔 연후에야 실행하였습니다. 자신을 살펴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고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서, 인정에 싫어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인정에 바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금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천하 사람들이 그 정사를 즐거워하고 그 덕에 귀의하여 부모처럼 바라보고 흐르는 물처럼 따랐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