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欽’은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는 말이며, ‘明’은 비추지 않음이 없다는 말이며, ‘文’은 훌륭함이 발현되었다는 말이며, ‘思’는 생각이 深遠하다는 말이며, ‘安安’은 억지로 애쓴 데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 德性의 훌륭함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와 억지로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니, 이른바 ‘본성대로 하셨다.[性之]’라는 것입니다.
‘允恭克讓’은 요임금의 행동을 말한 것입니다.
그 공손함은 겉모습을 꾸민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允恭’이라고 하였으며, 그 겸양은 억지로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克讓’이라고 한 것이니, 이른바 “편안하게 여겨 이를 행하였다.[安而行之]”라는 것입니다.
안에 축적한 것이 깊고 두터우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빛나고 밝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방 너머까지 뒤덮어 하늘과 땅 사이에 밝게 이르게 된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聖王’이라는 분의 덕입니다.
原注
‘克明俊德’은 자신의 큰 덕을 잘 밝혔다는 말이니, ‘欽明文思’는 여러 덕의 항목이요 ‘큰 덕’은 그 덕들의 총칭입니다.
‘明俊德’은 修身에 해당하는 일이요 ‘親九族’은 齊家에 해당하는 일이니, 이른바 “자신이 수양되면 집안이 가지런하게 된다.[身修而家齊]”는 것입니다.
그리고 ‘九族旣睦 平章百姓’은 이른바 “집안이 가지런하게 되면 나라가 다스려진다.[家齊而國治]”는 것입니다.
‘百姓昭明 協和萬邦 黎民於變時雍’은 이른바 “나라가 잘 다스려지면 천하가 평안해진다.[國治而天下平]”는 것입니다.
畿內 백성의 덕이 밝아졌다는 것을 ‘昭明’이라 한 것은 밝아짐이 지극하다는 것이고, 만방의 제후국을 화합하도록 한 것을 ‘協和’라 한 것은 화합하도록 함이 지극하다는 것이며, ‘於變’이라 한 것은 교화되지 않은 백성이 없으며 아름다워지지 않은 풍속이 없어서 화락해짐이 봄과 같았다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聖王’이라는 분의 治世입니다.
原注
먼저 ‘克明俊德’을 말한 것은 요임금이 스스로 자신의 덕을 밝힐 수 있었다는 말이며, 다음에 ‘百姓昭明’을 말한 것은 백성도 자신의 덕을 밝힌 것을 말합니다.
德은 사람이면 똑같이 얻은 것이므로 본래 지혜롭거나 어리석은 차이가 없지만, 일반 백성은 타고난 기질에 구속되고 사욕에 가려지기 때문에 그 덕이 저절로 밝아질 수 없으니, 반드시 신묘하고 성스러운 경지에 오른 임금이 덕을 밝혀 천하 사람을 위해 창도해주는 도움을 받고나서야 각자 그 처음 상태를 회복하게 됩니다.
백성의 덕이 밝아지는 것은 임금의 덕이 먼저 밝아짐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五帝의 治世 가운데 요임금 때보다 훌륭한 治世는 없었는데, 그 근본은 자신의 큰 덕을 능히 밝히신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대학》에서 明明德을 新民의 단서로 보았으니, 그렇다면 〈堯典〉은 아마도 《대학》의 鼻祖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