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先儒
이 嘗論之曰 浩
가 言河圖‧洛書
가 寄言於
獸之文
이라하니 夫圖書之顯
은 乃天地之理
가 自然發見
하여 如垂象然
하니 非有寄言者也
라
又言神人接對하여 手書粲然하여 辭旨深妙라하니 此가 又理之所必無者也라
神無聲色貌象하니 曷爲其能書耶리오 至於信謙之之說하여 作宮以上接天神하니 尤爲愚誕이로소이다
夫天은 非若地之有形也라 自地而上이 無非天者니 日月星辰之繫乎天이 非若草木山川之麗乎地也라
著明森列하여 躔度行止가 皆氣機自運하여 莫使之然而然者라 無所託也니
若其有託則是는 以形相屬이니 一麗乎形이면 能不壞乎아
或者가 惑於荒幻之言하여 乃謂或聆其音旨하며 或覩其儀觀하며 或受其詔告符契라하나니 寧有是哉리오하니
原注
先儒인 胡寅이 일찍이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습니다. “최호가 ‘〈河圖〉와 〈洛書〉는 모두 짐승의 무늬에 기탁하여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저 〈河圖〉와 〈洛書〉의 출현은 바로 天地의 이치가 자연히 발현하여 마치 象을 드리운 듯하니 기탁하여 말한 것이 아니다.
또 ‘신과 인간이 직접 대면하여 손수 쓴 필적이 명백하여 말의 취지가 매우 오묘하다.’라고 하였다. 이는 또 이치상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은 소리도 빛깔도 모습도 형상도 없으니 어찌 글을 쓸 수 있겠는가. 심지어 구겸지의 말을 믿고서 靜輪宮을 지어 위로 天神을 접한다고 하니 더욱 어리석고 허무맹랑하다.
저 하늘은 땅처럼 형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 있는 것이 하늘 아닌 것이 없으니 日月과 星辰이 하늘에 매어 있는 것은 草木과 山川이 땅에 붙어 있는 것과 같지 않다.
밝게 배열되어 천체가 운행하는 것이 모두 천지의 기능이 저절로 운행되어 그렇게 하도록 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어서 의탁한 바가 없다.
만약 의탁한 바가 있다면 이는 형체에다가 서로 매어놓는 것이니 한번 형체에 매어져 있으면 소멸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神이라는 것은 만물을 신묘하게 함을 말한 것이니 造化의 자취가 차고 비고 없어지고 그쳐서 헤아릴 수 없음을 이른 것이다.
어떤 이가 허황된 말에 현혹되어 마침내 말하기를 그 音旨를 들었다고도 하며 그 위의를 보았다고도 하며 계시와 부절을 받았다고도 말한다. 어찌 이럴 리가 있겠는가.”
原注
신은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胡寅의 의론은 훌륭합니다. 그렇다면 임금이 하늘을 섬기는 것은 과연 무슨 도입니까?
《詩經》에 이르기를 “상제가 그대를 굽어보고 계시니, 그대 두 마음을 품지 말지어다.[上帝臨女 無貳爾心]”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두 마음을 품지 말고 근심하지 말지어다. 상제가 그대를 굽어보고 계시니라.[無貳無虞 上帝臨女]”라고 하였습니다.
‘두 마음을 품지 말라[無貳]’는 것은 하나이니 專一함을 위주로 하는 것은 敬이고 능히 전일할 수 있는 것은 誠입니다. 湯王이 하늘을 섬긴 것은 ‘이 밝은 명을 돌아본 것[顧諟明命]’뿐이고,
文王이 하늘을 섬긴 것은 ‘공경하고 삼가신 것[翼翼小心]’뿐이니, 어찌 밖에서 구하겠습니까. 임금이 이를 안다면 토목공사를 굳이 크게 벌이지 않으며 儀物을 굳이 사치스럽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위엄 있게 스스로를 단속하여 항상 천지신명을 마주한 것처럼 할 것이니, 音旨를 듣고 위의를 보고 부절을 받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놀고 즐기며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神明과 더불어 주선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