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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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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2-7-나(按)
按 武王之始克商也 訪洪範於箕子하시고 其始踐阼也 又訪丹書於太公하시니 可謂急於道者矣
而太公望所告 不出之二言하니 蓋敬則萬善 俱立이요 怠則萬善 俱廢하며 義則理爲之主 欲則物爲之主 吉凶存亡之所由分이니
上古聖人 已致謹於此矣
武王 聞之하시고 惕若戒懼하사 而銘之器物하여 以自警焉하시니 蓋恐斯須不存而怠與欲 得乘其隙也
原注
其後 孔子 贊易하사 於坤之六二라하여시늘 이라하니
蓋敬則此心 無私邪之累 內之所以直也 義則事事物物 各當其分이라 外之所以方也
自黃帝而武王‧自武王而孔子 其皆一道신저
原注
以上 叙堯‧舜‧禹‧湯‧文‧武之學이라
原注
或謂堯‧舜而下 皆生知之聖이니 今以學言 何哉
蓋生而可知者 義理之源爾어니와
若夫治己治人之法 固不能無待於學也
稱堯‧舜‧禹‧湯 莫不有師라하니
之論語컨대 孔子之所自許也 孔子之所嘗憂也
則雖生知之聖이나 未有不從事於學者니이다
原注
然自商以前 未有學之名하니 數聖人之心傳面命 與君臣之間 胥訓胥告者 無非學也
願治之主 誠卽其全書而熟復之 則千載聖學之源流 將瞭然於胷中이니 勉力行이면 二帝三王之盛 可以企及也
今特撮其大要하여 之於篇하여 以見學有本云하노이다


原注
2-7-나(按)
【臣按】 武王이 商나라를 쳐서 막 이겼을 때 洪範에 대해 箕子에게 묻고, 무왕께서 막 즉위하였을 때 또 丹書에 대해 太公에게 물었으니, 道를 묻는 것을 급선무로 여긴 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태공망이 아뢰었던 내용이 敬과 義 두 글자를 벗어나지 않았으니, 이는 공경하면 온갖 善이 모두 확립되고 태만하면 만 가지 선이 모두 폐해지며, 의로우면 이치가 그 주인이 되고 욕심을 부리면 외물이 그 주인이 되는지라, 吉凶과 存亡의 분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上古의 성인들은 이미 이 敬과 義에 삼감을 지극히 하셨습니다.
무왕이 그 道를 듣고는 조심하는 마음으로 두려워하고 器物에 그 道를 새겨 넣어 스스로 경계하였으니, 이것은 경과 의가 잠깐이라도 보존되지 않으면 태만과 욕심이 그 틈을 탈까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原注
그 뒤에 孔子가 《易經》을 부연하여 〈坤卦〉의 六二 爻辭에 “敬하여 안을 곧게 하고 義하여 밖을 방정하게 한다.”라고 하자, 先儒가 해석하기를 “敬이 확립되면 안이 곧아지고, 義가 드러나면 밖이 방정해진다.”라고 하였습니다.
공경하면 이 마음에 사사롭고 간사한 허물이 없게 되니 안이 이 때문에 곧아지게 되고, 의로우면 사물마다 제각기 그 분수에 합당하게 되니 외면이 이 때문에 방정하게 됩니다.
黃帝로부터 武王에 이르기까지, 무왕으로부터 孔子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의 道일 것입니다.
原注
이상은 임금‧임금‧우왕禹王탕왕湯王문왕文王무왕武王의 학문을 서술하였다.
原注
혹자는 “임금‧임금 이후의 성왕聖王들은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성인聖人인데 이제 ‘학문學問’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합니다.
그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의리의 근원일 뿐입니다.
자신을 다스리고 남을 다스리는 법은 참으로 학문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옛 기록에 임금‧임금‧우왕禹王탕왕湯王은 모두 스승이 없는 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논어論語》를 상고해보면 ‘옛것을 믿고 좋아하는 것’은 공자孔子께서 자허自許하였던 것이고, ‘학문을 강마講磨하지 않는 것’은 공자께서 일찍이 우려하였던 것입니다.
또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고 민첩하게 추구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였고,
또 ‘열 가구가 사는 작은 고을에도 진실하고 신의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있겠지만 나처럼 학문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비록 태어날 때부터 아는 성인이라 하더라도 학문에 힘쓰지 않은 분은 없었습니다.
原注
그러나 나라 이전에는 아직 ‘학문學問’이라는 명칭이 없었으니, 《서경書經》에 실린 몇몇 성인의 마음으로 전수하고 대면하여 명한 것과 군신 간에 서로 훈계하고 고해준 것을 살펴보면 학문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치세治世를 염원하는 임금이 진실로 그 책 전체에 나아가 반복하여 익숙하게 익히면 천년 성학聖學의 원류가 장차 가슴속에서 명료해질 것이니, 부지런히 힘써 행하면 이제삼왕二帝三王이 이룩했던 성세盛世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단지 그 대요大要만을 발췌하여 이 책에 써서 학문에 근본이 있음을 보입니다.


역주
역주1 : 대전본‧사고본에는 ‘聞’으로 되어 있다.
역주2 敬與義 : 《西山讀書記》 卷18에는 《朱子語類》 卷69 〈易5〉의 말을 인용하여 ‘敬’과 ‘義’에 대해 ‘敬’은 ‘자신을 확립하는 근본[立己之本]’이며, ‘義’는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엄정하게 방정하여 일마다 그 알맞음을 얻은 것[義是處事 截然方正 各得其宜]’이라고 설명하였다.
역주3 敬以直內 義以方外 : 《周易》 〈坤卦 文言傳〉에 보인다.
역주4 先儒……外方 : 先儒는 程頤이다. 이 내용은 《伊川易傳》 卷1 〈坤卦 文言傳〉에 보인다.
역주5 : 대전본‧사고본에는 ‘歟’로 되어 있다.
역주6 : 사고본에는 ‘攷’로 되어 있다.
역주7 信而好古 : 《論語》 〈述而〉 제1장에 보인다.
역주8 學之不講 : 《논어》 〈술이〉 제3장에 보인다.
역주9 我非……求之也 : 《논어》 〈술이〉 제19장에 보인다.
역주10 十室……好學也 : 《논어》 〈公冶長〉 제27장에 보인다.
역주11 觀書所載 : 宋나라 사람 陳經의 《尙書詳解》 卷1 〈堯典〉에도 “지금 《書經》에 실려 있는 요임금의 ‘아, 四岳아! 有能한 사람이 있으면 그로 하여금 홍수를 다스리게 하겠다.’라는 말을 보면, 그 말씨가 완곡하여 급박하지 않고…….[今觀書所載堯所以諮四岳有能俾乂 其詞緩而不迫……]”라는 내용이 보인다. 이에 근거하여 원문의 ‘書’를 《서경》으로 번역하였다.
역주12 : 대전본에는 ‘强’으로 되어 있다.
역주13 : 대전본‧사고본에는 ‘著’로 되어 있다.
역주14 : 대전본‧사고본에는 ‘者’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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