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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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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5-11-나2(按)
按 公都子 學於告子者也
故以性善爲非而設者之說하여 以闢孟子어늘 孟子 不與之하시고 獨以性之發見者言之하시니
蓋所謂性者 仁義禮智而已
然未發之前 無兆朕之可見이라가 惟感物而動하여 爲惻隱‧爲羞惡‧爲恭敬‧爲是非然後에야 性之本 可識이라
蓋四者 情也而其本則性也
由其性之善이라 故發而爲情 亦善하니
因情之善而性之善 可知矣
夫善者 性也而能爲善者 才也
以體言하고 以用言하니 才本可以爲善而不可以爲惡이어늘 今乃至於爲不善者 是豈才之罪哉리오
陷溺使然也
原注
夫四者之心 所以人人 皆有者 由其具仁‧義‧禮‧智之性故也
鑠者 以火銷金之名이니 火之銷金 由外以至內也어니와 性則我所固有 非自外來
獨患夫人之弗思弗求爾
夫物 有求而弗得者 在外故也
性則求其在我者 何不得之有리오
本然之才 初無限量하여 極天下之善하여 無不可爲者
今乃善惡相去之遠 由不能盡其才也
曰思曰求而又曰盡이라하시니 孟子教人用功之至要
烝民之詩 其説 已見前章하니 合而觀之 可也니이다


原注
5-11-나2(按)
【臣按】 公都子는 告子에게 배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틀린 것으로 여겨 세 사람의 설을 늘어놓아 孟子를 배척하였는데, 맹자는 그와 변론하지 않고 오직 性이 발현된 것만 가지고 말하였습니다.
이른바 ‘性’이라는 것은 仁‧義‧禮‧智일 뿐입니다.
그러나 아직 발현되기 전에는 볼 수 있는 조짐이 없다가 오직 외물에 감촉되어 動하여서 惻隱‧羞惡‧恭敬‧是非가 된 뒤에야 본성의 근본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네 가지는 情인데, 그 근본은 性입니다.
그 선한 본성에서 나오기 때문에 발현하여 情이 된 것 역시 선합니다.
情이 선한 것을 통해서 본성이 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릇 ‘善’이라는 것은 본성이고 능히 善을 행하는 것은 재질입니다.
본성은 體로 말한 것이고 재질은 用으로 말한 것이니, 재질은 본래 善이 될 수 있고 惡은 될 수 없는데 이제 마침내 不善을 행하는 데 이른 것은 이것이 어찌 재질의 탓이겠습니까.
물욕이 빠뜨려서 그렇게 하도록 한 것입니다.
原注
저 네 가지의 마음을 사람마다 모두 가지고 있는 이유는 사람이 仁‧義‧禮‧智의 본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鑠’은 불로 쇠를 녹이는 것을 이름한 것이니, 불이 쇠를 녹이는 것은 밖으로부터 안에 이르는 것이지만 본성은 나에게 본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고 구하지 않는 것이 문제일 뿐입니다.
대저 物이 구함이 있는데도 얻지 못하는 것은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본성은 나에게 있는 것을 구하는 것이니 어찌 얻지 못함이 있겠습니까.
본연의 재질은 애초에 한정이 없어서 천하의 善을 지극히 하여 할 수 없는 것이 없습니다.
이제 마침내 善과 惡의 거리가 멀어진 것은 그 재질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다[思]’라고 하고 ‘구하다[求]’라고 하고 또 ‘다하다[盡]’라고 하였으니, 이는 孟子가 사람들로 하여금 힘을 쓰도록 한 지극한 요체입니다.
〈烝民〉시는 그 내용이 이미 앞 장에 보이니 합쳐서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역주
역주1 : 사고본에는 ‘二’로 되어 있다.
역주2 : 사고본에는 ‘辨’으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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