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曰 然則天理‧聖人之所以若是其實者는 何也오 曰 一則純이요 二則雜이라 純則誠이요 雜則妄이니 此가 常物之大情也라
夫天之所以爲天也가 冲漠無朕而萬理兼該하여 無所不具하나 然其爲體則一而已矣니 未始有物以雜之也라
是以로 無聲‧無臭‧無思‧無爲而一元之氣가 春秋冬夏‧晝夜昏明이 未嘗有一息之謬하며
天下之物洪纖巨細‧飛潛動植이 亦莫不各得其性命之正以生而未嘗有一毫之差하니 此가 天理之所以爲實而不妄者也라
原注
12-1-나3(或)
혹자가 물었다. “‘성실함[誠]’이 무슨 뜻인지 자세히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朱熹가 대답하였다.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우선 그 이름의 의미를 가지고 말한다면 眞實無妄하다는 말이며,
事理가 이 이름을 얻었다면 또한 그 가리키는 대상의 크고 작음에 따라 모두 진실무망하다는 의미에서 이 이름을 얻은 것뿐이다.
자연의 이치를 가지고 말한다면, 천지간에 오직 天理만이 지극히 진실하여 거짓이 없기 때문에 천리가 ‘성실함’이란 이름을 얻은 것이니, 이른바 ‘하늘의 도[天之道]’나 ‘귀신의 덕[鬼神之德]’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덕을 가지고 말한다면, 생명이 있는 것들 중에 오직 聖人의 마음만이 지극히 진실하여 거짓이 없기 때문에 성인이 ‘성실함’이란 이름을 얻은 것이니, 이른바 ‘굳이 힘쓰지 않아도 들어맞으며 애써 고찰하지 않아도 터득하는 것[不勉而中 不思而得]’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일에 따라 말한다면, 한 생각의 진실함이 또한 성실함이며, 한 가지 일의 진실함이 또한 성실함이며, 한 가지 행실의 진실함이 또한 성실함이다.
그 크고 작음은 비록 다르다지만 그 의미의 귀결점은 ‘진실함[實]’에 있지 않은 적이 없었다.”
原注
“그렇다면 天理와 聖人이 이처럼 진실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인 것은 순수한 것이고 둘인 것은 섞인 것이며, 순수한 것은 성실한 것이고 섞인 것은 거짓된 것이니, 이것이 보통 사물의 常情이다.
하늘이 하늘인 이유는 텅 비고 형체가 없으나 온갖 이치가 두루 갖추어져 있어서 구비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體는 하나일 뿐이니, 어떤 것이 있어서 섞인 적이 없다.
이 때문에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생각도 없고 作爲도 없으나, 一元의 氣가 봄이든 가을이든 겨울이든 여름이든 밤이든 낮이든 어둡든 밝든 일찍이 한 순간도 잘못된 적이 없으며,
천하의 사물이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나는 것이든 헤엄치는 것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또한 저마다 그 올바른 性命을 얻어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없어 한 치의 어긋남도 있은 적이 없다. 이것이 天理가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것이 된 까닭이다.
原注
사람과 사물의 생겨남과 性命의 바름은 참으로 또한 天理의 진실함 아닌 것이 없지만, 기질의 치우침과 口鼻耳目‧四肢의 기호가 이를 가리면 사욕이 생겨날 수 있다.
이 때문에 그 惻隱之心이 발현될 때 해치는 마음이 섞이면 仁을 행하는 것이 진실하지 않게 되고, 羞惡之心이 발현될 때 탐욕스러운 마음이 섞이면 義를 행하는 것이 진실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바로 보통 사람의 마음이 善을 행하는 데 힘쓰고자 하지만 안에 숨겨진 것과 밖으로 드러난 것이 항상 다르게 되는 것을 면치 못하는 이유이다.
심한 경우 속이고 기망하여 끝내는 소인에 떨어지는 것으로 귀결되기까지 하는 것은 해치는 마음과 탐욕스러운 마음이 섞이기 때문이다.
原注
오직 聖人만은 기질이 깨끗하고 순수하여 혼연한 天理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사사로운 人欲으로 해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仁이라면 안팎이 모두 仁이어서 한 터럭의 不仁도 없으며,
義라면 안팎이 모두 義여서 한 터럭의 不義도 없는 것이다. 聖人의 德은 참으로 천하의 善을 행함에 하나의 일도 혹여 빠트리는 것이 없고,
聖人의 善은 또 천하의 진실됨을 지극히 함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으니, 이것이 바로 굳이 힘쓰지 않고 고찰하지 않아도 조용히 도에 맞아 행동거지와 威儀가 어느 하나 禮에 맞지 않은 것이 없는 이유이다.”
原注
“그렇다면 私欲을 면치 못하여 그 덕을 진실되게 하지 못하는 보통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聖人이 이에 대해 이미 말씀하셨다. 바로 ‘善을 택하여 굳게 잡아 지키는 것[擇善而固執之]’뿐이다.
무릇 천하의 일에 대해 모두, 이렇게 하는 것이 善이니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하는 것이 惡이니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면, 그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는 마음은 참으로 이미 독실한 것이다.
여기에 또 굳게 잡아 지키는 노력을 더하여 비록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때라 할지라도 반드시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하고 조심해서 감히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이른바 ‘사욕’이란 것이 나와서는 밖으로 베풀 곳이 없게 되며 들어가서는 안으로 감출 곳이 없게 된다.
그리하여 저절로 사라지고 없어져서 나의 병이 되지 못할 것이니, 나의 덕이 또 진실되지 못할까를 어찌 근심하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성실함이 되고자 하는 것[誠之]’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