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敏于辯論
하여 多大言
하고 自標置
하더니 가 어늘 訓
이 往見
하여 相得甚歡
이라
注
가 介之
하여 謁王守澄
注+中人用事者.한대 守澄
이 善遇之
하여 幷薦訓‧注于帝
注+也.하다
訓
이 持詭
하여 激
可聽
하고 善鉤揣人主意
라 帝
가 見其言縱橫
하시고 謂果可任
이라하사 遂不疑而待遇
가 莫與比
러니
하여 居中倚重
하니 實行宰相事
러라 訓
이 本挾奇進
하여 及大權在己
에 銳意去惡
이라
故與帝言天下
에 無不如所欲
하고 挾注相朋比
하여 務
恩復讎
하더니
不踰月
에 同平章事
하여 每進見
에 宰相
이 避位
하고 天子
가 傾意
하시니 宦官‧衛兵
이 皆慴憚迎拜
하고
天下險怪士가 徼取富貴에 皆憑以爲資러라 訓이 時時進賢才偉望하여 以悅士心하니 人皆惑之하더라
鄭注
가 以
로 江湖間
하여 多藝
하고 詭譎陰狡
하여 億探人廋隱
하더니 하여늘
한대 하여 賜賚至渥
이러니 是夜
에 彗出東方
하니 長
이 三尺
이요 芒耀怒急
하더라
貲積鉅萬호대 不知止하니 險人躁夫가 有所干請에 日走其門하더라
李訓
이 旣附注進
이라 於是
에 兩人
이 權震天下矣
러라 俄
하다
이라 日日議論帝前
하여 相倡和謀鉏翦中官
하여 謂功在晷刻
이라한대 帝
가 惑之
하시니
乘是進退士大夫
하며 撓骫朝法
하니 衆
이 策其必亂
이러니 未幾
에 라하여늘
李訓
은 浮躁寡謀
하고 鄭注
는 斬斬小人
으로 邀幸天功
하니 寧不殆哉
아
文宗
이 與宰相
으로 稱訓
호대 稟
하여 服人倫之敎
는 不如公等
이어니와 然天下奇才
는 公等
이 弗及也
리라
가 曰 訓
이 曾不得齒徒隷
니 尙才之云
이니잇가 世以德裕言
으로 爲然
하더라
傳
에 曰
이라하니 若訓等
은 持腐株
하여 支大厦之顚
하니
天下
가 爲寒心豎毛
어늘 文宗
이 偃然倚之成功
하사 卒爲
所乘
하니 天果厭唐德哉
인저
20-14-가
이훈李訓은 변론에 뛰어나 거창한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자화자찬하는 자였다. 정주鄭注가 소의절도사昭義節度使의 막부에서 직임을 맡고 있었는데, 이훈이 찾아가 만나보고서 서로 의기가 투합하여 매우 기뻐하였다.
정주가 소개하여
왕수징王守澄을
注+왕수징王守澄은 환관으로 권력을 전횡한 자이다. 만나자, 왕수징은 이훈을 매우 잘 대우하여 이훈과 정주를
문종文宗에게
注+‘제帝’는 당 문종唐 文宗이다. 모두 천거하였다.
이훈李訓이 궤변의 재주를 가져서 격앙된 어조로 하는 말은 사람들을 솔깃하게 만들었으며 군주의 의중을 잘 헤아렸다. 문종은 그가 거침없이 말하는 것을 보고 과연 등용할 만하다고 생각하여 마침내 의심하지 않고 아무도 견줄 자가 없을 정도로 대우하였다.
그리고 이훈을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승진시켜 궐내에서 기대와 중시를 하자, 이훈이 실제로 재상의 일을 행하였다. 이훈은 본래 특출한 생각을 가지고 궁궐에 들어온 것이었다. 그리하여 대권이 자신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자 악을 제거하는 데 전념하였다.
이 때문에 문종과 천하의 일을 논할 때 그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정주鄭注에 의지하여 한패가 되어서 사사로운 은혜에 보답하고 사사로운 원수를 갚는 데에 힘썼다.
한 달이 못 되어 동평장사同平章事가 되어 매번 나아가 문종을 알현할 때마다 다른 재상들은 자리를 피하고 천자는 이훈에게 마음을 다 기울이자, 환관과 위병衛兵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이훈을 맞이하여 절하였고,
천하의 온갖 괴상한 자들이 부귀를 거머쥘 때 모두 이훈에 기대어 매개로 삼았다. 이훈이 때때로 명망이 높은 어진 인재들을 천거하여 사대부의 마음을 기쁘게 하자, 사람들이 모두 이에 현혹되었다.
정주鄭注는 방기方技로 강호에서 행세하였다. 재주가 많았으며 속임수에 능한 데다 음험하고 교활하여 사람들의 속마음을 잘 알아맞혔다. 이소李愬가 정주를 왕수징王守澄에게 추천하였는데,
왕수징이 정주를 문종文宗에게 천거하자 문종은 정주를 들어오도록 불러서 욕당문浴堂門에서 응대하고 상을 매우 후하게 하사하였다. 이날 밤 혜성彗星이 동방에 나타났는데, 길이가 3척尺이었으며 빛이 번쩍거리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얼마 뒤에 태복경 겸어사대부太僕卿 兼御史大夫로 승진하였다. 정주는 천성적으로 탐욕스러웠다. 이미 권세와 총애를 받게 되자 관직을 팔아서 이익을 도모하였다.
그리하여 재물을 수만금 쌓았는데도 그칠 줄을 모르니, 간사하고 출세에 조급한 자들이 청탁할 일이 있으면 날마다 그의 집 문으로 달려갔다.
이훈李訓이 정주鄭注에게 의지하여 벼슬길에 나오자 이에 두 사람의 권세가 천하를 진동시켰다. 얼마 뒤에 정주가 한림시강학사翰林侍講學士에 발탁되었다.
이때 이훈은 이미 궁중에서 직임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매일같이 문종文宗 앞에서 의론하여 서로 주거니 받거니 환관들을 제거할 모의를 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짧은 시간 내에 공을 세울 수 있다고 하자, 문종이 이에 현혹되었다.
두 사람이 이를 틈타 사대부들을 등용하고 물러나게 하며 조정의 법도를 왜곡시켜 어지럽히자, 사람들은 그들이 반드시 난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얼마 뒤에 이훈 등이 거짓으로 감로甘露가 금오 좌장원金吾 左仗院의 나무에 내렸다고 하자,
문종은 중위 구사량中尉 仇士良에게 명하여 가서 보게 하고 이를 기화로 구사량 등을 주살하고자 하였다. 그러다가 일이 실패하여 이훈 등은 모두 멸족되었다.
사신史臣의 찬贊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훈李訓은 조급하고 지모가 부족하였으며 정주鄭注는 작은 재능이 다 보이는 소인이었다. 그런데도 제왕의 공업을 바랐으니 어찌 위태롭지 않겠는가!
문종文宗이 재상 정담鄭覃과 함께 이훈을 평가하기를 ‘이훈이 오상五常의 본성을 타고나서 인륜의 가르침을 받은 것은 공들만 못하지만, 천하의 기이한 재주는 공들이 그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자,
이덕유李德裕가 대답하기를 ‘이훈은 일찍이 복역하는 죄인들 축에도 끼지 못하였으니 오히려 무슨 재주를 말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세상에서는 이덕유의 말을 옳다고 하였다.
전傳에 이르기를 ‘나라가 장차 망할 때에는 하늘이 난인亂人을 내려보낸다.’라고 하였으니, 이훈과 같은 자들은 썩은 나무를 가지고서 기울어가는 큰 건물을 지탱하는 것과 같았다.
천하 사람들은 두려워서 머리털이 곤두섰는데도 문종은 태평하게 이들에게 기대어 공을 이루고자 하여 끝내 환관들에게 이용당하였으니, 하늘은 정말로 당나라의 존립을 싫어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