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開元宰相
의 孫也
注+懷淸儉, 稱賢相.라 貌醜色如藍
하고 有口辯
하니 이 悦之
하사 擢爲御史大夫
하시다
가 每見賓客
에 姬妾
이 不離側
이러니 杞
가 嘗往問疾
할새 子儀
가 悉屛侍妾
이어늘
或이 問其故한대 子儀가 曰 杞가 貌陋而心險하니 婦人輩가 見之必笑하리니 它日에 杞가 得志하면 吾家가 無類矣라하더라
하니 杞
가 陋無文學
이라 이 與同在相位輕之
하여 多託疾不與
하니 杞
가 亦恨之
하더라
杞가 陰狡하여 欲起勢立威하여 小不附者를 必欲寘之死地하고
20-5-가
노기盧杞는
개원開元(713~741) 연간의 재상
노회신盧懷愼의 손자이다.
注+노회신盧懷愼은 청렴하고 검소하여 어진 재상으로 일컬어졌다. 얼굴이 못생기고 낯빛이 푸른빛을 띠었으며 말재주가 있었다.
덕종德宗이 좋아하여 그를 발탁하여
어사대부御史大夫로 삼았다.
곽자의郭子儀가 빈객을 접견할 때마다 희첩姬妾이 그 곁을 떠나지 않았는데, 노기가 언젠가 문병하러 갔을 때에는 곽자의가 시중들던 첩들을 모두 물러가게 하였다.
어떤 사람이 그 이유를 묻자 곽자의가 대답하였다. “노기는 얼굴이 못생기고 마음이 음험하다. 부녀자들이 그를 보고 반드시 웃을 것이니, 훗날 노기가 출세하면 우리 집안은 살아남을 자가 없을 것이다.”
郭子儀
노기盧杞는 얼마 뒤에 문하시랑門下侍郞‧동평장사同平章事에 발탁되었는데, 그가 왜소하고 못생긴 데다 학문적 소양이 없었기 때문에 양염楊炎이 그와 같은 반열의 재상이면서도 그를 무시하여 병을 핑계대고 노기와 함께 회식을 하지 않는 일이 많으니 노기가 또한 원한을 품었다.
노기는 음험하고 교활하여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위엄을 세우고자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부화하지 않은 자를 반드시 사지死地에 밀어 넣고자 하였다.
그리고 태상박사 배연령太常博士 裴延齡을 끌어들여 집현전직학사集賢殿直學士로 삼아서 친히 대하고 신임을 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노기는 양염을 참소하여 정사政事에서 물러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