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注+漢司馬遷所作.齊世家
注+齊世家, 紀齊國之事也. 가 事
爲大夫
하여 其收賦稅於民
에 以小斗受之
하고 其粟
民
에 以大斗
하여 行陰德於民而景公
이 弗禁
하니
由此田氏
가 得齊衆心
하여 宗族
이 益彊
이어늘 가 數諫
호대 公
이 弗聽
하다
景公이 有寵姬生子荼러니 景公이 病에 命其相國惠子‧高昭子하여 立荼爲太子러니 景公이 卒에 兩相이 立荼하니 是爲晏孺子라
田乞
가 不說
하여 遂立景公
의 子陽生而殺晏孺子
하고 專齊政
이러니
乞
가 卒
注+諡釐子.커늘 子
이 立
하여 復修釐子之政
하여 以大斗出貸
하고 以小斗收
하더니 執其君簡公而弑之
하고 立簡公弟
하니 是爲
이라
田
이 言於平公曰 德施
는 人之所欲
이니 君其行之
하소서 刑罰
은 人之所惡
니 臣請行之
호리이다 行之五年
에 齊國之政
이 皆歸田
이어늘
이 於是
에 盡誅鮑‧晏‧監止
注+鮑‧晏‧監三氏, 皆齊大家.及公族之彊者而割齊
하여 自
以東至琅
注+安平‧琅, 皆邑名.히 自爲封邑
하니 封邑
이 大於平公之所食
이러라
이 卒
注+諡成子.커늘 子
이 立
하여 使其兄弟宗人
으로 盡爲齊都邑大夫
러니
盤之孫
가 乃遷其君
於海上
하여 食一城以奉其先祀
하고 和
가 立爲齊侯
하다
17-2-가
《사기》
注+《사기史記》는 한漢나라 사마천司馬遷의 저작이다. 〈
제세가齊世家〉에
注+《사기史記》 〈제세가齊世家〉는 제齊나라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
전걸田乞가
제 경공齊 景公을 섬겨 대부가 되었다. 전기가 백성들에게
부세賦稅를 징수할 때 작은 말로 받고 곡식을 백성들에게 줄 때에는 큰 말로 하여 백성에게 음덕을 베풀었는데 경공이 금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전씨田氏가 제나라의 민심을 얻어 종족이 더욱 강성해지자 안자晏子(안영晏嬰)가 자주 간하였는데 경공이 듣지 않았다.
경공에게 총희寵姬가 있어 아들 도荼를 낳았다. 경공은 중병이 들자 국상國相인 국혜자國惠子와 고소자高昭子에게 명하여 도荼를 태자로 세웠는데, 경공이 죽자 두 국상이 도荼를 옹립하니 바로 안유자晏孺子이다.
전기는 불쾌하여 마침내 경공의 다른 아들 양생陽生을 옹립하고 나서 안유자晏孺子를 죽이고 제齊나라의 정권을 전단專斷하였다.
전기가 죽자
注+전걸田乞는 시호가 이자釐子이다. 아들
전항田恒이 그 지위를 이어받아 다시
이자釐子의 정치를 재현해 큰 말로 빌려주고 작은 말로 거두어들였다. 자신의 임금
간공簡公을 잡아 시해하고 간공의 아우를 세우니 바로
평공平公이다.
전항이 평공에게 말하였다. “덕을 베푸는 것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니 임금께서 행하십시오. 형벌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니 신이 행하겠습니다.” 이를 시행한 지 5년 만에 제나라의 정권이 모두 전항에게 귀속되었다.
전항이 이에
포씨鮑氏‧
안씨晏氏‧
감지監止와
注+포씨鮑氏‧안씨晏氏‧감씨監氏 세 가문은 모두 제齊나라의 큰 가문이다. 공족公族 가운데 강성한 이들을 모두 죽이고, 제나라를 분할하여
안평安平에서부터 동쪽으로
낭야琅邪에 이르기까지
注+‘안평安平’과 ‘낭야琅邪’는 모두 고을 이름이다. 스스로 봉읍으로 삼으니 그 봉읍이 평공의 식읍보다 컸다.
전항이 죽자
注+전항田恒은 시호가 성자成子이다. 아들
전반田盤이 그 지위를 이어받아 자신의 형제와
종인宗人들을 모두
제齊나라의
도都와
읍邑들의
대부大夫가 되게 하였다.
전반의 손자 전화田和가 마침내 자신의 임금인 강공康公을 바닷가로 이주시키고 성城 하나를 식읍으로 주어 그 조상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전화가 즉위하여 제齊나라의 임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