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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2)

대학연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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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朱熹 曰 洛書 九數而五 居中이요 洪範 九疇而皇極 居五하니
으로 諸儒 皆祖其說하니 獨嘗以經之文義語脉으로 求之而知其必不然也하노라
蓋皇者 君之稱也 極者 至極之義 標準之名이니 常在物之中央而四外 望之以取正者也
故以極으로 爲在中之準的則可而訓極爲中則不可하니 若北辰之爲天極 脊棟之爲屋極 其義 皆然
於皇極之義 爲尤近하니
顧今之說者 旣誤於此而并失於彼 是以其說 展轉迷謬而終不能以自明也하나니
卽如舊說인대 姑亦無問其어니와 但卽經文而讀皇爲大하고 讀極爲中則夫所謂惟大作中‧大則受之 爲何等語乎
原注
今以熹說 推之則人君 以一身으로 履至尊之位어시든 四方 輻湊面內而環觀之하여
自東而望者 不過此而西也 自南而望者 不過此而北也 天下之至中이라
旣居天下之至中則必有天下之絶德而後 可以立至極之標準이니
故必順五行‧敬하여 以修其身하며‧協하여 以齊其政然後
至極之標凖 卓然有以立乎天下之至中하여 使夫面內而環觀者 莫不於是而取則焉이니
語其仁則極天下之仁而天下之爲仁者 莫能加하며 語其孝則極天下之孝而天下之爲孝者 莫能尙이니 是則所謂皇極者也
由是而權之以하며 하며 하며 考其禍福於人이면 如挈裘領하여 豈有一毛之不順哉리오
洛書之數 所以雖始於一‧終於九而必以五 居其中이며 洪範之疇 所以雖本於五行而究於福‧極而必以皇極으로 爲之主也
原注
若箕子之言 有曰皇 建其有極云者 謂人君 以其一身而立至極之標準於天下也
其曰斂時五福하여 用敷錫厥庶民者 謂人君 能建其極則爲五福之所聚而又有以使民으로 觀感而化焉則是 又能布此福而與其民也
其曰惟時厥庶民 于汝極 錫汝保極云者 則謂民 視君以爲至極之標準而從其化則是 復以此福으로 還錫其君而使之長爲至極之標準也
其曰凡厥庶民 無有淫朋하며 人無有比德 惟皇 作極云者 則言民之所以能有是德者 皆君之德 有以爲至極之標準也
原注
其曰凡厥庶民 有猷‧有爲‧有守 汝則念之하며 不協于極이라도 不罹于咎어든 皇則受之云者
則言君旣立極於上而下之從化 或有淺深遲速之不同하니
其有謀者‧有才者‧有德者 人君 固當念之而不忘이요 其或未能盡合而未抵乎大戾者 亦當受之而不拒也
其曰而康而色하여 曰予攸好德이라거든 汝則錫之福하면 時人 斯其惟皇之極云者
則謂人之有能革面從君而以好德自名則雖未必出於中心之實이나 而與之以善則是人者 亦得以君爲極而勉其實也
原注
其曰無虐煢獨하고 而畏高明하라 人之有能‧有爲 使羞其行하면 而邦 其昌云者
則謂君之於民 一視同仁하여 凡有才能 皆使進善則人材 衆多而國賴以興也
其曰凡厥正人 旣富오사 方穀이니 汝弗能使有好于而家하면 時人 斯其辜리라 于其無好德 汝雖錫之福이라도 其作汝用咎云者
則謂凡欲正人者 必先有以富之然後 可以納之於善이요 若不能有所賴於其家則此人 必將陷於不義
至其無復更有好德之心而後에야 姑欲敎之以修身하며 勸之以求福則已無及於事而其起以報汝 唯有惡而無善矣리라
蓋人之氣稟 或淸或濁或純或駮이라 有不可以一律齊者
是以 聖人 所以立極于上者 至嚴至密而所以接引于下者 至寬至廣하여
雖彼之所以化於此者 淺深遲速 其效 或有不同이나 而吾之所以應於彼者 長養涵育 其心 未嘗不一也
原注
其曰無偏無陂 至于歸其有極云者 則謂天下之人 皆不敢徇其己私하여 以從乎上之化而會歸乎至極之標準也
蓋偏‧陂‧好‧惡者 己私之生於心者也 偏‧黨‧反‧側者 己私之見於事者也
王之義‧王之道‧王之路 上之化也 所謂皇極者也 遵義‧遵道‧遵路 方會其極也 蕩蕩‧平平‧正直 則已歸于極矣니라
原注
其曰皇極之敷言 是彝是訓이니 于帝其訓云者
則言人君 以身立極而布令于下則其所以爲常爲敎者 皆天之理而不異乎
其曰凡厥庶民 極之敷言 是訓是行하면 以近天子之光云者
則謂天下之人 於君所命 皆能受其敎而謹行之則是能不自絶遠而有以被其道德之光華也
其曰天子 作民父母하여 以爲天下王云者 則謂人君 能立至極之標準이라 所以作億兆之父母而爲天下之王이니
不然則有其位‧無其德이라 不足以而履天下之極尊矣리라
原注
是書也 原於天之錫禹하니 雖其茫昧幽眇하여 有不可得而知者 然箕子之所以告武王者 則已備矣
顧其辭之宏深奥雅 若有未易言者 然常虛心平氣而再三反復焉則亦坦然明白而無一字之可疑로대
但先儒 不察乎人君所以修身立道之本이라 是以 誤訓皇極하여 作大中하며
又見其詞 多爲含容寬大之言하고 因復認中爲含苟且不分善惡之意하니 殊不知極雖居中而非有取乎中之義
且中之爲義 又以其無過不及至精至當而無有毫釐之差 亦非如其所指之云也어늘
乃以誤認之中으로 爲誤訓之極하여 不謹乎至嚴至密之體而務爲至寬至廣之量하니
其弊 將使人君으로 不知修身以立政而墮於하여
卒至於是非顛倒하며 賢否貿亂而禍敗 隨之 尙何斂福錫民之可望哉리오


原注
11-2-나1(朱)
朱熹가 말하였다. “洛書는 아홉 개의 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5가 중앙에 위치하고, 洪範은 아홉 가지 범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皇極이 다섯 번째 범주에 해당한다.
漢나라 孔安國이 ‘皇極’을 ‘크게 중정한 도[大中]’라고 해석하면서부터 여러 유학자가 모두 공안국의 설을 祖述하였다. 홀로 일찍이 경문의 글자 뜻과 말의 맥락을 가지고 연구해보고 공안국의 설이 결단코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皇’은 임금을 일컫는 말이며, ‘極’은 의미로 말하면 ‘至極’이고 명칭으로 말하면 표준이니, 항상 만물의 중앙에 있어서 사방의 사람들이 이를 바라보고서 모범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므로 ‘極’을 중앙에 있는 표준이라고 풀이한다면 괜찮지만, ‘極’을 ‘중앙[中]’이라고 풀이한다면 가당하지 않다. 예컨대 북극성을 ‘天極’이라 하고 용마룻대를 ‘屋極’이라고 하는 것이 그 뜻이 모두 그러하고,
《周禮》에 이른바 ‘民極(백성의 표준)’이라고 한 것과 《詩經》에 이른바 ‘四方之極(사방의 표준)’이라고 한 것은 ‘皇極’의 의미에 더욱 가깝다.
돌아보건대 오늘날 ‘極’의 의미를 주석하는 사람들은 이미 ‘皇極’에 대해 잘못 해석해버리니 아울러 ‘民極’과 ‘四方之極’의 의미까지도 잘못 풀이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 설이 갈수록 잘못 해석되어 종국에는 자체적으로 밝혀질 수 없게 되었다.
만일 舊說과 같이 해석한다면 우선 다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다만 경문에 나아가 ‘皇’을 ‘大’로 읽고 ‘極’을 ‘中’으로 바꾸어 읽으면 이른바 ‘惟大作中’과 ‘大則受之’는 무슨 말이 되겠는가.
原注
이제 나의 설을 가지고 추론해보면, 임금이 한 사람이 지극히 존귀한 자리에 임하면 사방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안쪽을 향하여 둘러서서 보고
동쪽에서 바라보는 이는 이곳을 건너뛰고서 서쪽으로 갈 수 없으며 남쪽에서 바라보는 이는 이곳을 건너뛰고서 북쪽으로 갈 수 없으니, 이곳이 천하에서 가장 중앙인 곳이다.
이미 천하에서 가장 중앙인 곳에 자리하였다면 반드시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덕을 가진 뒤에야 지극한 표준을 세울 수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五行’을 순리대로 소통시키고 五事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운용하여 자신을 수양하며, 八政으로 민생을 풍요롭게 하고 五紀로 天行에 합치되도록 하여 그 정사를 다스린 뒤에야
지극한 표준이 우뚝하게 천하에서 가장 중앙인 곳에 설 수 있게 되어 안쪽을 향하여 둘러서서 살펴보는 자들이 여기에서 준칙을 취하지 않는 이가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 仁으로 말하면 천하의 인을 지극히 하여 천하의 인을 행하는 자들이 이보다 더할 수 없으며 그 孝로 말하면 천하의 효를 지극히 하여 천하의 효를 행하는 자들이 이보다 더할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皇極’이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三德으로 저울질하고 卜筮로 살피며 그 길흉을 하늘에서 징험하며 그 禍福을 사람에게서 상고하면 마치 갖옷의 깃을 당기는 것과 같아서, 어찌 터럭 하나라도 따르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
이것이 洛書의 수가 비록 1에서 시작하여 9에서 마치더라도 반드시 5를 그 중앙에 자리하게 한 이유이며 洪範의 범주가 비록 오행에서 시작하여 五福과 六極에서 다하더라도 반드시 황극을 그 중심이 되도록 한 이유이다.
原注
이를테면, 箕子의 말 중에서 ‘임금이 표준[極]을 세운다.[皇建其有極]’라고 한 것은, 임금이 자기 자신으로 지극한 표준을 천하에 세우는 것을 이른다.
기자가 ‘이 五福을 거두어서 뭇 백성에게 福을 펴서 준다.[斂時五福 用敷錫厥庶民]’고 한 것은, 임금이 그 극을 제대로 세우면 오복이 모이는 바가 되고 또 백성이 보고 느껴 교화되도록 하니 그렇게 되면 이는 또 이 복을 펴서 자신의 백성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을 이른다.
기자가 ‘이 뭇 백성이 너의 표준에 대해 너에게 極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해준다.[惟時厥庶民 于汝極 錫汝保極]’라고 한 것은, 곧 백성이 임금을 보기를 지극한 표준으로 여겨 임금의 교화를 따르니 그렇게 되면 이는 다시 이 복을 자신의 임금에게 되돌려 주어 임금이 길이 지극한 표준이 되도록 하는 것을 이른다.
기자가 ‘무릇 뭇 백성이 간악한 무리를 짓는 이가 없고 지위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사사로이 서로 작당하여 부화뇌동하는 이가 없는 것은 임금이 표준이 되기 때문이다.[凡厥庶民 無有淫朋 人無有比德 惟皇作極]’라고 한 것은, 백성이 이러한 덕을 소유할 수 있는 까닭이 모두 임금의 덕이 지극한 표준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原注
기자가 ‘무릇 뭇 백성 가운데 智謀가 있는 사람이 있고 實行이 있는 사람이 있고 節操가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너는 생각하며, 표준[極]에 합치되지 않더라도 허물에 걸리지 않거든 임금은 받아주어라.[凡厥庶民 有猷‧有爲‧有守 汝則念之 不協于極 不罹于咎 皇則受之]’라고 한 것은,
임금이 이미 위에서 극을 세우면 아랫사람이 교화를 따르는 것이 간혹 얕고 깊고 느리고 빠른 다름이 있으니,
지모가 있는 사람과 재능이 있는 사람과 덕이 있는 사람을 임금은 진실로 염두에 두고 잊지 말아야 하며 혹시라도 아직 極에 완전히 합치되지는 않았더라도 큰 죄악에는 이르지 않은 사람도 받아주고 물리치지 말아야 함을 이른 것이다.
기자가 ‘어떤 사람이 얼굴빛을 편안히 하고 「내가 좋아하는 바가 덕이다.」라고 말하거든, 네가 그에게 복을 주면 이 사람이 이에 임금의 표준에 맞게 할 것이다.[而康而色 曰予攸好德 汝則錫之福 時人 斯其惟皇之極]’라고 한 것은,
속마음과 달리 겉으로만 임금을 따르며 덕을 좋아한다고 자칭하는 사람이 있다면 비록 꼭 실제 속마음에서 나오지는 않았더라도 임금이 또한 그가 자칭한 것을 따라서 善으로 그에게 주어야 하니, 그렇게 하면 이 사람 또한 임금을 極으로 삼아 그 실상에 부합하도록 노력할 수 있음을 이른 것이다.
原注
기자가 ‘백성 가운데 미천한 사람을 학대하지 말고 지위가 있는 사람 가운데 존귀하고 현달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재능이 있고 실행이 있는 사람을 그 재능을 행할 수 있게 해주면 나라가 창성할 것이다.[無虐煢獨 而畏高明 人之有能有爲 使羞其行 而邦其昌]’라고 한 것은,
임금이 백성에 대해서 똑같이 보고 똑같이 사랑하여 무릇 재능 있는 사람을 모두 선에 나아가도록 하면 인재가 많아서 나라가 이에 힘입어 흥성하게 됨을 이른 것이다.
기자가 ‘무릇 그 바르고 곧은 사람은 부유해진 뒤에야 비로소 선하게 되니, 네가 너의 집에서 좋은 것을 갖게 할 수 없으면 이 사람이 이에 죄를 짓게 될 것이다. 덕을 좋아하지 않는 이에게 네가 비록 복을 주더라도 이는 네가 허물이 있는 사람을 쓰는 것이 될 것이다.[凡厥正人 旣富 方穀 汝弗能使有好于而家 時人斯其辜 于其無好德 汝雖錫之福 其作汝用咎]’라고 한 것은,
무릇 다른 사람을 바르고 곧게 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를 부유해지게 한 뒤에야 선으로 들일 수 있고 만약 그 임금의 집에서 도움을 받는 것을 있게 하지 못하면 이 사람이 반드시 불의에 빠지게 될 것이니,
다시는 더 이상 덕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게 되는 지경에 이른 뒤에야 고식적으로 자신을 수양하는 것으로 가르치고 복을 추구하도록 권면하고자 한다면 이미 일에 미칠 수 없고 그가 일어나 너에게 보답하는 것이 오직 악만 있고 선은 없음을 이른 것이다.
대저 사람의 氣稟은 맑기도 하고 탁하기도 하고 순수하기도 하고 잡박하기도 하므로 일률적으로 같게 할 수 없는 점이 있다.
이 때문에 성인이 위에서 표준을 세우는 것은 지극히 엄정하고 지극히 정밀하지만 아래에서 인도하는 것은 지극히 너그럽고 지극히 넓어서,
비록 저 백성이 이 표준에 교화되는 것이 얕고 깊고 느리고 빠름은 그 효과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내가 저 백성에게 응하는 것은 키워주고 길러줌이 그 마음이 일찍이 같지 않은 적이 없다.
原注
기자가 ‘치우침이 없고 기욺이 없어[無偏無陂]’부터 ‘그 표준에 와서 이를 것이다[歸其有極]’까지 말한 것은, 천하 사람들이 모두 감히 사욕을 따르지 않고 임금의 교화를 따라 지극한 표준에 합하여 와서 이름을 이른다.
대개 치우치고 기울고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은 사욕이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고, 치우치고 패거리 짓고 상도에 위배되고 공평하지 않은 것은 사욕이 일에 나타난 것이다.
‘王之義’‧‘王之道’‧‘王之路’는 임금의 교화이니, 이른바 ‘皇極’이라는 것이다. ‘遵王之義’‧‘遵王之道’‧‘遵王之路’는 바야흐로 임금의 표준[極]에 합하여 오는 것이며 ‘蕩蕩’‧‘平平’‧‘正直’은 이미 표준에 와서 이름을 이른 것이다.
原注
기자가 ‘임금이 표준[極]을 세워 편 말이 바로 常道이고 가르침이니, 하늘에서 가르쳐준 것이다.[皇極之敷言 是彝是訓 于帝其訓]’라고 한 것은,
임금이 자신으로 極을 세우고 아래에 명령을 선포하면 그것이 상도가 되고 가르침이 되는 것이 모두 天理여서 상제가 내려준 치우치지 않은 덕[衷]과 다르지 않기 때문임을 이른다.
기자가 ‘무릇 뭇 백성이 표준을 세워 편 말을 가르침으로 삼고 행하면 천자의 光華를 가까이한다.[凡厥庶民 極之敷言 是訓是行 以近天子之光]’라고 한 것은,
천하 사람들이 임금이 명한 것에 대해 모두 그 가르침을 받아들여 삼가 행할 수 있다면 이는 능히 스스로 끊어버리고 멀리하지 않을 수 있어서 그 도덕의 광화를 입게 됨을 이른다.
기자가 ‘천자께서 백성의 부모가 되시어 천하의 王者가 되었다.[天子作民父母 以爲天下王]’라고 한 것은, 임금이 지극한 표준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에 억조창생의 부모가 되어 천하의 王者가 되었음을 이른다.
이와 같이 하지 않는다면 임금의 지위는 소유하여도 임금의 덕은 없기 때문에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으로 나와 천하의 지극히 존귀한 지위에 오를 수 없다.
原注
이 〈洪範〉의 글은 하늘이 禹王에게 준 것에서 근원한 것이다. 비록 그 내용이 분명하지 않고 오묘하여 알 수 없는 것이 있지만, 기자가 무왕에게 일러준 것이 이미 잘 갖추어져 있다.
다만, 그 내용의 크고 깊으며 오묘하고 고아함은 쉽게 말할 수 없는 점이 있는 듯하나 일찍이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고르게 하여 재삼 반복하여 읽어보니 또한 의미가 명백하게 드러나서 한 글자도 의혹할 만한 것이 없는데,
단지 先儒는 임금이 자신을 수양하여 도를 확립하는 근본을 자세히 살피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皇極’을 ‘大中’으로 잘못 풀이하였으며,
또 그 말이 대부분 모호하고 혼란스런 말이 많은 것을 보고 그 때문에 다시 ‘中’을 모호하고 구차하여 선과 악을 분별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하였으니, ‘極’이 비록 중앙에 자리하기는 하지만 중간을 취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中’의 뜻이 또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어 지극히 정밀하고 지극히 합당해서 털끝만큼의 어긋남도 없다는 뜻이니, 또한 그것이 가리킨 것과 같지 않은데,
마침내 ‘中’을 잘못 이해하였기 때문에 極을 잘못 풀이하게 되어 지극히 엄정하고 지극히 정밀한 본체를 삼가지 않고 지극히 너그럽고 지극히 넓은 도량이 되는 데 힘쓰게 된 것이다.
그 폐단이 장차 임금이 자신을 수양하여 정사를 확립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漢 元帝나 고식적이었던 唐 代宗과 같은 잘못에 빠져
종국에는 시비가 전도되고 賢否가 뒤죽박죽되어 재앙과 실패가 뒤따르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니, 오히려 복을 거두어 백성에게 주기를 어떻게 바랄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11-2-나1(朱) : 《晦庵集》 卷72 〈皇極辨〉에 보인다. 다만 해당 인용문은 그 일부를 수록한 것이나, 저본의 내용과 비교해볼 때 생략된 자구가 다소 있고 전후의 순서가 뒤바뀌어 있다.
역주2 自漢……大中 : “皇建其有極”에 대한 孔安國의 傳에 “‘大中之道’는 그 중앙에 크게 세움이니, 홍범구주의 의를 행함을 이른다.[大中之道 大立其有中 謂行九疇之義]”라고 하였다. 孔穎達도 역시 “‘皇’은 ‘크다’라는 뜻이고, ‘極’은 ‘중앙’이라는 뜻이다.[皇 大也 極 中也]”라고 주석하였다. 《尙書注疏 洪範 孔穎達疏》
역주3 禮所謂民極 : 《周禮》 〈天官 冢宰〉에 “제왕이 국도를 건설할 때 방위를 분별하여 위치를 바르게 하며 國都를 분간하고 田野에 경계를 정하며, 벼슬을 설치하여 직무를 나누어 백성의 표준을 삼는다.[惟王建國 辨方正位 體國經野 設官分職 以爲民極]”라고 하였다.
역주4 詩所謂四方之極 : 《詩經》 〈商頌 殷武〉에 “상나라 도읍이 잘 정돈되어 있으니, 사방의 표준이로다.[商邑翼翼 四方之極]”라고 하였다.
역주5 : 사고본에는 ‘他’로 되어 있다.
역주6 五事 : 洪範九疇의 두 번째 범주로, 용모[貌]‧말하는 것[言]‧보는 것[視]‧듣는 것[聽]‧생각하는 것[思]이다. 蔡沈의 《書集傳》 〈洪範〉에는 ‘人事가 발현하는 선후의 순서[人事發見先後之敍]’라고 하였다. 진덕수는 하늘이 부여하여 사람에게 갖추어진 것으로, 용모가 공손한 것[貌之恭]‧말이 법도에 맞는 것[言之從]‧봄이 분명한 것[視之明]‧들음이 밝은 것[聽之聰]‧생각이 슬기로운 것[思之睿]을 모두 ‘本然之性’이라고 하였다. 2-6-나 참조.
역주7 八政 : 홍범구주의 세 번째 범주로, 먹는 것[食], 재화[貨], 제사[祀], 네 번째는 司空, 다섯 번째는 司徒, 여섯 번째는 司寇, 일곱 번째는 賓, 여덟 번째는 軍師이다.
역주8 五紀 : 홍범구주의 네 번째 범주로, 歲‧月‧日‧星辰‧曆數이다.
역주9 三德 : 홍범구주의 여섯 번째 범주로, 정직한 것[正直], 강함으로 이기는 것[剛克], 부드러움으로 이기는 것[柔克]이다.
역주10 審之以卜筮 : 홍범구주의 일곱 번째 범주인 稽疑에 대한 것으로, 이는 卜人과 筮人을 가려서 세워 의혹에 대해 점을 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역주11 騐其休咎於天 : 홍범구주의 여덟 번째 범주인 庶徵에 대한 것으로, 비오는 것[雨], 햇볕이 나는 것[暘], 더운 것[燠], 추운 것[寒], 바람이 부는 것[風], 제때에 맞는 것[時]이다.
역주12 人君……自名 : 淳熙本 《晦庵文集》 〈皇極辨〉에는 ‘亦當敎以修身求福之道’로 되어 있다. 《性理群書句解》도 이와 같다.
역주13 上帝之降衷 : 《書經》 〈商書 湯誥〉에 “위대하신 上帝께서 백성에게 치우치지 않은 덕을 내려주었다.[惟皇上帝 降衷于下民]”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蔡沈의 《書集傳》 〈湯誥〉에서는 ‘衷’을 ‘中’으로 해석하고 ‘하늘이 명을 내림에 仁‧義‧禮‧智‧信의 이치를 갖추어 치우치거나 기욺이 없는 것[天之降命 而具仁義禮智信之理 無所偏倚]’이라고 설명하였는데, 진덕수 역시 이와 같다. 5-1-가 참조. 반면 孔安國은 ‘衷’을 ‘善’으로 해석하였다. 《尙書注疏 湯誥》
역주14 首出庶物 : 《周易》 〈乾卦 彖傳〉에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으로 나옴에 만국이 모두 편안하도다.[首出庶物 萬國咸寧]”라고 하였다.
역주15 : 사고본에는 ‘糊’로 되어 있다.
역주16 漢元帝之優游 : 漢 元帝(기원전 76~기원전 33, 재위 기원전 49~기원전 33)의 휘는 奭으로, 宣帝의 장남이다. 성격이 유순하고 어질며 儒者들을 좋아하였다. 태자 시절에 宣帝에게 관대한 법 집행과 儒生의 등용을 간언하자, 선제는 霸道와 王道의 병용이야말로 漢家의 制度라고 꾸짖고, “우리나라를 어지럽게 할 사람은 태자로구나![亂我家者 太子也]”라는 탄식을 하였다. 3-10-가3 참조. 즉위 후 貢禹‧薛廣德‧韋玄成‧匡衡 등 儒生을 丞相으로 기용하였으나, 외척과 환관들을 중용하여 그들의 전횡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유생의 상소에 대해 관대하게 용납하기는 하였지만 과감하게 실천하지 못하였고 후계의 선정을 명확히 하지 않아 국정의 혼란을 초래하였다. 《前漢書》 〈元帝紀〉의 贊에는 “元帝는 文辭에 이끌려 우유부단하였기에 宣帝의 功業이 쇠퇴하였다.[元帝……上牽制文義 優游不斷 孝宣之業衰焉]”라고 평가하였다. 4-9-가 참조.
역주17 唐代宗之姑息 : 唐 代宗(726~779, 재위 762~779)의 휘는 豫로, 肅宗 亨의 장남이다. 762년 즉위하자, 병마를 소집하고 回鶻의 지원을 받아 史朝義를 토벌하였다. 763년 패주하던 사조의의 죽음으로, 사실상 安史의 난이 진압되었으나 당 왕조는 각지에 남아 있던 반군의 잔당을 일거에 제압할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에 대종은 임시방책으로 반군의 降將 李懷仙을 盧龍節度使, 田承嗣를 魏博節度使, 李寶臣을 成德節度使에 임명하여 회유하고, 戰功이 있는 자를 각지의 節度使에 임명하여 관할 지역을 鎭撫하게 하였다. 이후 절도사는 觀察使를 겸임하여 관할 지역의 실질적인 자치권을 확보하는 한편, 세습을 통한 지위의 인정을 확보하였다. 이에 대해 范祖禹는 藩鎭에 대한 고식적인 대응이 번진을 강성하게 만들고 왕실을 약화시켰으며, 당 왕조의 멸망을 초래한 중요한 원인이라고 여겼다. 《唐鑑 卷16 德宗5》

대학연의(2)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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