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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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楊炎 爲相하여 惡京兆하여 左遷이러니 盧杞 欲陷炎하여 引郢爲御史大夫하다
先是 將營家廟할새 有宅 在東都 憑河南尹하여 賣之어늘 惠伯 買以爲官廨러니
按之하여 以爲有羡利라하여늘田晉하여 議法한대
以爲律 하나니 當奪官이라하여늘하여 貶晉衡州司馬하고
更召它吏議法한대 以爲監主 自盜어든 罪當絞라하더라
炎廟 正直廟地어늘 因譖炎曰 玆地 有王氣 러시니 有異志 故於其地 建廟라하여늘


20-6-가
당초에 양염楊炎이 재상으로 있으면서 경조윤 엄영京兆尹 嚴郢을 미워하여 대리경大理卿으로 좌천시켰는데, 노기盧杞가 양염을 함정에 빠트리고자 엄영을 끌어들여 어사대부御史大夫로 삼았다.
이에 앞서 양염이 가묘家廟를 지으려고 하면서 집이 동도東都(낙양洛陽)에 있었기 때문에 하남윤 조혜백河南尹 趙惠伯에게 이를 팔게 하자 조혜백이 사서 관아의 건물로 삼았었다.
엄영이 이를 조사하여 양염이 차익을 남겼다고 하자, 노기가 대리정 전진大理正 田晉을 불러서 이 사안을 법에 따라 논하게 하였다.
전진이 “형률에 따르면 이를 감독하는 관원이 사고팔 때 차익을 남기는 일이 있으면 걸취乞取(강제로 빼앗음)로 논하는 법이니, 그 죄는 탈관奪官(관직을 박탈함)에 해당합니다.”라고 하자, 노기가 노하여 전진을 형주사마衡州司馬로 좌천시켰다.
다시 다른 관리를 불러서 법에 따라 논하게 하자 “이를 감독하는 관원이 스스로 훔쳤으면 그 죄는 교형絞刑에 해당합니다.”라고 하였다.
양염楊炎가묘家廟가 바로 소숭蕭嵩가묘家廟가 있었던 곳에 위치하자, 노기盧杞가 이를 이용해 양염을 참소하였다. “이 땅에 왕기王氣가 서려 있기 때문에 현종玄宗께서 소숭에게 가묘를 옮기도록 하셨는데, 양염이 다른 뜻이 있기 때문에 그곳에 가묘를 지은 것입니다.”
양염을 애주사마崖州司馬로 좌천시키고 중사中使를 보내 호송하게 하였는데, 애주崖州에 이르기 전에 양염을 목 졸라 죽였다. 그리고 조혜백趙惠伯다전위多田尉로 좌천시켜 조혜백 역시 죽였다.


역주
역주1 20-6-가 : 《資治通鑑》 권227 〈唐紀43 德宗2〉 建中 2년(781) 9월 조에 보인다.
역주2 嚴郢 : ?~783. 당나라 때의 대신이다. 자는 叔敖이며 지금의 섬서성 華陰市인 華州 華陰 사람이다. 代宗 때 감찰어사에 임명되었으며, 뒤이어 河南尹, 京兆尹을 역임하였다. 德宗 때 재상 楊炎의 미움을 받아 大理卿으로 좌천되었다가 盧杞에 의해 어사대부가 되었다. 뒤에 엄영의 재능을 시기한 노기에 의해 費州刺史로 쫓겨나 1년여 만에 그곳에서 죽었다. 열전이 《新唐書》 권145에 보인다.
역주3 大理卿 : 관직명으로, 大理寺(대리시)의 장관이다. 刑獄을 주관하였다.
역주4 趙惠伯 : ?~782. 지금의 秦州區인 天水 西縣 사람이다. 代宗 大曆 14년(779)에 河南尹이 되었다. 楊炎과 교분이 있었는데, 양염의 사택을 官의 돈으로 샀다고 하여 多田尉로 좌천되었다가 얼마 뒤에 피살되었다.
역주5 大理正 : 大理寺의 장관인 大理卿의 속관으로, 정원은 2명이다. 刑獄을 담당하였다.
역주6 監臨……取論 : 당나라 형률에 “관원이 관과 매매하여 이익을 남긴 경우에는 그 이익을 계산하여 감독하는 재물을 강제로 빼앗은 것으로 논한다.[若賣買有賸利者 計利以乞取監臨財物論]”라는 규정이 있다. 《通典 卷165 刑3 刑制下》
역주7 蕭嵩 : ?~749. 唐 玄宗 때의 재상으로, 자는 喬甫이며 호는 體竣이다. 祖籍은 南蘭陵이다. 梁 武帝(464~549, 재위 502~549)의 후손이자 後梁 明帝(542~585, 재위 562~585)의 玄孫이다. 현종 때 同中書門下三品, 兼中書令, 太子太師 등을 역임하였다. 徐國公에 봉해졌으며 開元 21년(733)에 재상에서 면직되었다. 뒤에 李林甫의 참소로 靑州刺史로 좌천되었다가 얼마 뒤에 다시 태자태사에 임명되었다.
역주8 玄宗令嵩徙之 : 소숭의 가묘는 지금의 西安市 동남쪽 曲江에 있었는데, 唐 玄宗이 이곳은 놀기에 좋은 곳이지 신령이 거할 곳이 아니라고 하여 옮기도록 명한 일이 있었다. 《資治通鑑 卷227 唐紀43 德宗 建中 2年》
역주9 炎貶……殺之 : 德宗 建中 2년(781) 10월 10일 乙未日의 일이다. 양염은 左僕射에서 崖州司馬로 좌천되었다가 애주에 도착하기 백 리 전에 목이 졸려 죽었다. 위 ‘譖炎罷政事’ 주석 참조. 崖州의 治所는 지금의 海南省 海口 동남쪽에 있었으며, ‘司馬’는 州의 부관이다.
역주10 多田尉 : 관직명으로, 多田縣의 縣尉이다. 다전현의 治所는 지금의 貴州省 思南縣 서쪽에 있었다.

대학연의(4)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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