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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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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2-5-나(按)
按 文王之宅厥心 卽大禹所謂
堯‧舜以來累聖相傳 一本乎此하시니
成王卽政之始 周公 恐其知文王之治法而未知文王之心法也하여
故作此書하여 以立政爲名하고 所陳 皆命官用人之事而必以宅心爲先하니
蓋用人 乃立政之本而宅心 又用人之本也
夫政事之修廢 由用人之得失이니 爲人君者 孰不知之리오마는
而用舍之間 鮮不易位者 心無定主而是非邪正 得以眩之故也
原注
文王 惟能安定其心하시니 故能立此常事‧司牧之人하사대 皆賢而有德者
心猶水然하니 撓而濁之 不見山嶽하고 淵澄弗動이면 毛髮燭焉하나니
惟至公이라사 可以見天下之私 惟至正이라사 可以見天下之邪 惟至靜이라사 可以見天下之動이니 文王之用人 所以皆適其當者 由其能宅心之故也
文王 이라 若無所事乎學而其所謂克宅 是乃文王之學也


原注
2-5-나(按)
【臣按】 文王의 ‘宅厥心(자신의 마음을 안정시켰다)’은 바로 大禹가 이른바 ‘安汝止(당신의 마음이 그쳐야 할 바를 편안하게 여기시라)’라는 것입니다.
堯임금과 舜임금 이래로 여러 聖王들이 전수해왔던 것이 한결같이 여기에 근본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成王이 親政을 시작했을 때 周公은 성왕이 문왕의 治法은 알고 아직 문왕의 心法은 알지 못할까 염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지어 〈立政〉이라고 명명하였고, 陳達한 내용은 모두 관리를 임명하고 인재를 등용하는 일이었는데 반드시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을 급선무로 삼았습니다.
이는 인재 등용이 바로 정치를 확립하는 근본이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또 인재 등용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政事가 행해지는지의 여부는 인재 등용이 제대로 되었는가에서 비롯되니, 임금 된 자가 누구인들 이를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등용하거나 등용하지 않을까를 결정할 때 적임자의 벼슬자리를 뒤바꾸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던 것은 임금의 마음에 일정한 주장이 없어서 是非와 邪正이 그 마음을 현혹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原注
文王이 능히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켰으니 이 때문에 이들 常事와 司牧과 같은 사람을 세우되 모두 현능하고 덕이 있는 자로 세웠습니다.
마음은 물과 같으니, 흔들어 흐려놓으면 거대한 산악도 보이지 않고, 맑고 깨끗하여 흔들지 않으면 모발도 여기에 비칩니다.
오직 지극히 공변되어야만 천하의 사사로움을 볼 수 있고, 오직 지극히 올발라야만 천하의 간사함을 볼 수 있으며, 오직 지극히 고요해야만 천하의 움직임을 볼 수 있으니, 문왕의 인재 등용이 모두 알맞았던 이유는 문왕이 능히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켰기 때문입니다.
문왕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聖人이니 마치 학문에 일삼을 것이 없을 듯하지만, 이른바 ‘克宅’이라고 한 것이 바로 문왕의 학문입니다.
그러나 ‘克宅厥心’이라고 하지 않고 ‘克厥宅心’이라고 한 것은 또한 〈皐陶謨〉에서 ‘愼修厥身’이라고 하지 않고 ‘愼厥身修’라고 한 것과 같으니 이 글을 읽는 사람은 글만 가지고 본의를 해쳐서야 되겠습니까.


역주
역주1 安汝止 : 《書經》 〈虞書 益稷〉에 보인다. 여기서 ‘汝’는 舜임금을 가리킨다. 앞에 나온 진덕수의 按說에서는 이 말을 ‘그 마음이 그쳐야 할 바를 편안하게 여기는 것[安其心之所止]’이라고 하였다. 2-2-가 참조.
역주2 生知之聖 : ‘生知’는 ‘生而知之’의 준말로, 聖人의 경지를 뜻한다. 《論語》 〈季氏〉 제9장에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는 상등이다.[生而知之者上也]”라고 하였는데, 朱熹는 《論語集註》 〈述而〉 제19장에서 ‘生而知之’를 ‘기질이 청명하고 의리에 밝아 배우지 않고도 아는 것[氣質淸明 義理昭著 不待學而知]’이라고 설명하였다. 2-1-나1(朱)의 주석 ‘上智’ 참조.
역주3 : 대전본‧사고본에는 ‘心’으로 되어 있다. 아랫글의 ‘然不曰克宅厥心而曰克厥宅心者’를 감안할 때, 문맥상 ‘心’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나, 《御定大學類義》에도 ‘云’으로 되어 있으므로 우선 저본을 따랐다.
역주4 然不……修也 : 문리로 보면 ‘克厥宅心’은 ‘그 宅의 心을 克히 하다.’로 해석하는 것이 ‘그 心을 克히 안정시키다.’로 해석하는 것보다 자연스럽다. 朱熹 역시 《朱子語類》 卷79 〈尙書 立政〉에서 ‘文王惟克厥宅心’의 ‘宅心’을 사람들이 모두 ‘處心’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며 앞부분의 ‘三有宅心’이 ‘處心’의 뜻이라면 ‘克宅厥心’이라고 했어야 한다는 근거를 들어 반박하고 있다. 진덕수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書經》 〈皐陶謨〉에 나오는 ‘愼厥身修’의 해석을 예로 들어 문법에 얽매이지 말고 聖學의 수양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여 이해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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