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24-8-나(안按)
[신안臣按] 개원開元 연간에 가렴주구를 일삼았던 신하는 우문융宇文融으로 시작하여 위견韋堅으로 그 뒤를 잇고 또 왕홍王鉷으로 그 뒤를 이었으며 또 양쇠楊釗로 그 끝을 맺었습니다.
이 네 사람이 모두 가렴주구로 현종에게 총애를 받고 백성들에게는 원한을 맺었으니, 이른바 나라의 요물이자 백성의 해충입니다.
그런데도 명황明皇(현종玄宗)이 자신의 욕망을 채울 욕심 때문에 그들을 좋아하고 총애하여 이러한 행동이 민심을 잃는 것이고 나라의 명맥을 좀먹는 것인 줄 몰랐습니다.
저 1천 척의 배들이 운집하고 온갖 재화가 산더미처럼 쌓인 것은 한 시대의 장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집안을 고갈시키고 백성들의 무덤을 파헤쳐서,
탄식하고 슬퍼했던 정상을 현종은 보지 못했으며 울부짖고 통곡하는 소리를 현종은 듣지 못했습니다.
原注
그리고 경작지가 있으면 조租가 있고 몸이 있으면 용庸이 있고 가호家戶가 있으면 조調가 있습니다. 천하의 경작지가 일정한 수효가 있으니 조租 또한 일정한 수효가 있는 것이며,
천하의 사람들이 일정한 수효가 있으니 용 또한 일정한 수효가 있는 것이며, 가호에 부과되는 조調 또한 그러하니, 어찌 정해진 부세賦稅 이외에 또 백억만 민緡의 수입이 있어서 현종이 제멋대로 쓰는 데 충당할 수 있겠습니까.
간신이 겁 없이 기망을 일삼는데도 현종이 이를 자세히 살피지 않아 국고가 차고 넘치는 것만 보고 사치의 욕망이 날로 늘어나서 후궁에게 하사하고 외척에게 하사하는 것이 더는 한정이 없었으니,
돈 한 푼, 실 한 오라기가 모두 백성의 고혈임을 생각지 않은 것입니다. 어떻게 차마 분토糞土처럼 하찮은 것으로 본단 말입니까.
훗날 변방의 장군이 군대를 몰아오자 국고에 저장된 것이 모두 역적의 소유가 되었으며, 왕홍王鉷‧양쇠楊釗의 무리 또한 모두 제 자신이 극형을 당하여 집안에 살아남은 부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뒤에 도리에 어긋나게 들어온 재물은 반드시 도리에 어긋나게 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가렴주구를 일삼는 신하는 그 죄가 도적질을 일삼는 신하보다 심합니다. 아, 참으로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