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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1)

대학연의(1)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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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元中하고 聚文學之士하여 或修書하며 或侍講하여
하사 以總之하고 有司 供給優厚하더니
中書舎人陸堅 以爲無益於國이요 徒爲라하여 欲奏罷之어늘 張說
自古帝王 於國家無事之時 莫不崇宮室‧廣聲色하시나니
今天子 獨延禮文儒하여 發揮典籍하시니 所益者하고 所損者하니
陸子之言 何不達也
聞之하시고 重說而薄堅하시다


4-7-가2
개원開元 연간에 여정서원麗正書院을 설치하고 문학적 소양이 있는 선비들을 모아 서적을 편수하기도 하고 시강侍講을 하기도 하였다.
장열張說수서사修書使로 삼아 이를 총괄하게 하고 유사有司로 하여금 물품을 넉넉하게 대주도록 하였다.
중서사인中書舎人 육견陸堅이 이러한 것은 나라에 무익하고 그저 낭비만 된다고 여겨서 주청하여 이를 혁파하려고 하자, 장열이 말하였다.
“예로부터 제왕이 국가에 아무런 변고가 없을 때에는 궁실을 높이 짓고 음악과 여색을 널리 추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지금 천자께서는 유독 문사文事에 능한 선비들을 초빙하고 예우하시어 전적典籍을 선양하시니 보탬은 크고 손실은 미미하다.
육자陸子(陸堅)의 말은 어쩌면 그렇게 사리에 어두운가.”
현종이 그 말을 듣고는 장열을 중히 여기고 육견을 가볍게 여겼다.


역주
역주1 4-7-가2 : 《資治通鑑》 卷212 〈唐紀28 玄宗 上之下〉에 보인다. 여기에서 사례로 든 張說과 陸堅의 일은 723년(開元11)에 있었다.
역주2 麗正書院 : 麗正修書院을 말한다. 718년(開元6)에 기존에 있던 乾元院을 개명한 것이다. 文史 관련 서적을 편수하는 일과 장서 등을 관장하였다. 723년(開元11)에는 長安의 光順門 밖에도 서원을 세웠으며, 이듬해에는 東都 洛陽의 明福門 밖에도 세웠다. 725년(開元13)에 集賢殿書院으로 개명되었다. ‘麗正’은 ‘正道에 붙다’라는 뜻으로, 《周易》 〈離卦 彖傳〉에 “거듭 밝음으로 정도에 붙어서 천하를 교화하여 이룬다.[重明 以麗乎正 乃化成天下]”라는 구절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 《新唐書 卷47 百官志》 《中國歷代官制詞典 麗正修書院》
역주3 張說 : 667~730. 자는 道濟‧說之로, 河南 洛陽 사람이다. 睿宗 때 東宮의 侍讀이 되었으며 同中書門下平章事에 올랐다. 玄宗이 즉위한 후에는 中書令이 되고 燕國公에 봉해졌다. 후에 宇文融과 李林甫의 모함으로 재상에서 물러나 집에서 國史를 편수하였다. 문장에 능하여 許國公 蘇頲과 함께 ‘燕許大手筆’로 불렸다. 문집으로 《張燕公集》이 있으며, 시호는 文貞이다.
역주4 修書使 : 麗正書院에서 文史에 관련된 서적을 편수하는 일을 담당했던 관원이다. 원래는 乾元院使였는데 麗正書院을 세우면서 그 명칭이 바뀌었다. 속관으로 文學直‧修撰‧校理‧刊正‧校勘 등을 두었다. 《中國歷代官制大辭典 修書使》 《中國歷代官制詞典 麗正院修書使》
역주5 : 사고본에는 ‘縻’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1) 책은 2019.06.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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