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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3)

대학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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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元中 在東都하사 欲還長安이어시늘 建言注+耀卿, 亦時宰相.호대 農人場圃 未畢하니 須冬可還이니이다
林甫 陽蹇獨在러니 問故하신대 對曰 臣非疾也 願奏事하노이다 二都 本帝王東西宮이니 車駕往幸 何所待時리오
假令妨農이라도 獨赦所過租賦 可也니이다 大悅하사 卽駕而西하시다


19-7-가
개원開元 연간(713~741)에 현종玄宗동도東都(낙양洛陽)에 있어 장안長安(서도西都)으로 돌아가고자 하자, 배요경裴耀卿 등이 건의하기를注+배요경裴耀卿 또한 당시의 재상이다. “농민의 수확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겨울이 되기를 기다려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임보李林甫가 절뚝거리는 척하여 홀로 뒤에 남았는데 현종이 까닭을 묻자 대답하였다. “신은 아픈 것이 아니라, 사안에 대해 아뢰고자 합니다. 동도와 서도는 본래 제왕의 서궁西宮이니 제왕의 행차가 어찌 농한기를 기다리겠습니까.
설령 농사에 방해되더라도 오직 경유하는 지역의 조세를 면제해주면 됩니다.” 현종이 크게 기뻐하여 즉시 출발하여 서도로 향해 갔다.


역주
역주1 19-7-가 : 《新唐書》 卷223上 〈姦臣列傳 李林甫〉에 보인다. 개원 24년(736)에 있었던 일이다.
역주2 : 대전본에는 ‘元’으로 되어 있으나, 宋代의 避諱이다.
역주3 裴耀卿 : 681~743. 자는 煥之이고, 당나라 絳州 稷山 사람이다. 裴子餘의 동생이다. 童子擧에 합격했고, 國子主簿에 올랐다. 玄宗 開元 초에 長安令이 되었다. 장안에는 옛날부터 관청에서 가격을 살펴 민간에서 물품을 구매하는 配戶和市의 제도가 있었는데, 미리 대금을 지급하여 장사꾼이 농간을 부리는 폐단을 없앴다. 濟州 刺史‧宣州 刺史‧冀州 刺史를 역임했는데, 모두 惠政을 베풀었다. 개원 20년(732) 京兆尹에 올랐다. 漕運을 확대해 關中의 三輔를 충실하게 하고 창고를 설치해 세금을 납부하게 하며, 수륙으로 길을 바꾸어 전운에 편리를 도모할 것을 건의했는데, 황제가 옳다고 여겼다. 黃門侍郞과 同中書門下平章事를 역임하고 轉運使를 거쳤다. 運糧을 구분해 나눠 3년 만에 곡식 7백만 石을 비축하고 조운에 따른 비용 30만 緡을 절약했다. 侍中에 올랐다. 개원 24년(736) 尙書左丞相으로 치사하고, 趙城侯에 봉해졌다. 玄宗 天寶 연간에 거듭 승진하여 右僕射에 올랐다. 시호는 文獻이다.
역주4 : 대전본에는 ‘帝’로 되어 있다.
역주5 : 대전본에는 ‘後’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3)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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