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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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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21-6-나(按)
按 靑蠅之爲物 出於汙穢之中而貪嗜食飮하여 常譁然杯案間하여 以敗人之酒醪羹胾하나니
世之小人 行汙而逐利하여 以傷人害物 實似之
營營者 旣侔其狀하고 又象其聲也 蠅之飛 或往或來하여 若有所營而聲又營營不已
以喩讒邪之人 朝夕經營하여 欲陷害人而言出於口 亦營營然不息也하니라 詩人 妙體物情이라 故形容如此하니
止于‧止于棘‧止于榛者 欲其棲泊於外하여 毋入人堂室以汙物이니
亦猶讒邪之人 宜屛之하여 毋在朝廷以傷善良也
原注
自昔不惟狂暴之君 信讒害政이라 雖慈祥樂易之君이라도 一惟讒言是信하면 亦能變移心志하나니
是也 成王 豈非樂易之資哉리오마는 始爲管‧蔡流言所入하여 幾至猜阻라가 賴天動威而後悔
故曰豈弟君子無信讒言也라하고 讒人之情 志在傷善하여 無有窮
故家有讒則家亂하고 國有讒則國亂하나니 管‧蔡 流言而四國不靖 乃其驗也
故曰讒人罔極交亂四國이라하고 末章 又指實事而言하니 二人者 當時被讒之人也
讒人之爲讒 皆架虛造端 如匠者 湊合材木以成室하니 二人 本無罪而讒者 巧成其罪
故曰讒罔極構我二人이라하니 痛其爲害之無已也 巷伯‧靑蠅二詩摹寫讒人之情狀 幾無餘蘊하니 爲人君者 其三復之니이다


原注
21-6-나()
[신안臣按] 쉬파리의 속성은 더러운 곳에서 나와 먹고 마시기를 탐하고 즐겨 항상 시끄럽게 술상 사이에서 날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술이며 고기며 음식을 망칩니다.
세상의 소인들이 더러운 짓을 행하여 이익을 추구하여 남들을 해치는 것이 참으로 이와 비슷합니다.
영영營營’은 그 모습을 모사해놓고 또 그 소리를 형상한 것이니 파리가 날아다니는 것은 마치 꾀하는 바가 있는 듯 왔다 갔다 하고 소리가 또 끝없이 앵앵거립니다.
그래서 이로써 간사하고 참소하는 사람이 종일토록 계획하고 꾸려서 남을 모함하고자 하고 참언을 내는 것 또한 앵앵거리듯 쉼이 없는 것을 비유하였습니다. 시인이 만물의 실정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묘사한 것입니다.
‘울타리에 앉았다.’, ‘가시나무 울타리에 앉았다.’, ‘개암나무 울타리에 앉았다.’는 것은 집 밖에 머물러 사람의 집안으로 들어와 물건을 더럽히지 말도록 하고자 한 것이니,
또한 간사하고 참소하는 사람을 외방으로 물리쳐서 조정에 있으면서 선량한 사람을 해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原注
예로부터 난폭한 군주만 참소를 믿어 정사를 해친 것이 아닙니다. 비록 자애롭고 화평한 군주라도 일단 참언만을 믿으면 또한 심지心志가 바뀔 수 있는 법입니다.
예를 들면 성왕成王주공周公을 의심했던 일이 이러한 경우입니다. 성왕成王이 어찌 화평한 자질을 가진 군주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처음 관숙管叔채숙蔡叔의 유언비어가 받아들여져서 하마터면 의심하고 멀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가 하늘이 위엄을 발동하는 데 힘입은 뒤에야 뉘우쳤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즐겁고 편안한 군자는 참언을 믿지 말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참소하는 사람의 실정은 뜻이 선량한 사람을 해치는 데 있어서 참소가 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안에 참소가 있으면 집안이 어지러워지고 나라에 참소가 있으면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법입니다. 관숙과 채숙이 유언비어를 퍼뜨리자 천하가 안정되지 못한 것이 바로 그 증험입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끝없이 남을 참소하여 천하를 휘저어놓았구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다시 실제 사실을 가리켜서 말하였으니 ‘두 사람’은 당시에 참소를 당한 사람입니다.
참소하는 사람이 참소하는 것은 모두 허위를 날조하여 단서를 만들기를 마치 장인이 재목을 끌어 모아 집을 짓는 것과 같으니, 두 사람이 본래 죄가 없지만 참소하는 사람이 그 죄를 교묘히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끝없이 남을 참소하여, 우리 둘을 얽어놓았구나.”라고 하였으니, 참언의 해로움이 끝이 없는 것을 가슴 아파한 것입니다. 〈항백巷伯〉과 〈청승靑蠅〉 두 시는 참소하는 사람의 정상을 거의 남김없이 묘사한 것이니 군주 된 자는 반복하여 살펴야 할 것입니다.


역주
역주1 : 사고본에는 없다.
역주2 : 대전본에는 ‘藩’으로 되어 있다.
역주3 : 사고본에는 이 앞에 ‘於’ 1자가 있다.
역주4 成王疑周公 : 《서경》 〈周書 金縢〉에 보인다. 周 武王이 별세한 뒤에 어린 成王이 즉위하고 周公 旦이 섭정하자, 殷 武庚의 三監인 管叔 鮮, 蔡叔 度, 霍叔 處는 성왕을 두렵게 하여 주공을 동요시키고자 “周公이 孺子(成王)에게 이롭지 못할 것이다.[公將不利於孺子]”라는 流言을 퍼뜨렸다. 성왕이 주공을 의심하자 주공이 물러나 東都(洛陽)에 머물렀다. 2년 후 유언을 퍼뜨린 배후가 관숙과 채숙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가을 수확을 앞두고 천둥 번개가 치고 바람이 불어 벼가 쓰러지고 큰 나무가 뽑히는 등 天災가 일어났다. 앞서 무왕이 위독했을 때 주공이 대신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점을 친 祝冊을 金縢의 궤에 보관한 일이 있었는데, 성왕이 이 金縢의 궤를 열어 祝冊을 읽고 잘못을 뉘우쳐 다시 주공을 맞이하여 섭정하게 하였다.
역주5 : 대전본에는 ‘也’로 되어 있다.
역주6 : 저본에는 ‘言’으로 되어 있으나, 저본의 경문 및 사고본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대학연의(4)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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