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21-6-나(안按)
[신안臣按] 쉬파리의 속성은 더러운 곳에서 나와 먹고 마시기를 탐하고 즐겨 항상 시끄럽게 술상 사이에서 날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술이며 고기며 음식을 망칩니다.
세상의 소인들이 더러운 짓을 행하여 이익을 추구하여 남들을 해치는 것이 참으로 이와 비슷합니다.
‘영영營營’은 그 모습을 모사해놓고 또 그 소리를 형상한 것이니 파리가 날아다니는 것은 마치 꾀하는 바가 있는 듯 왔다 갔다 하고 소리가 또 끝없이 앵앵거립니다.
그래서 이로써 간사하고 참소하는 사람이 종일토록 계획하고 꾸려서 남을 모함하고자 하고 참언을 내는 것 또한 앵앵거리듯 쉼이 없는 것을 비유하였습니다. 시인이 만물의 실정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묘사한 것입니다.
‘울타리에 앉았다.’, ‘가시나무 울타리에 앉았다.’, ‘개암나무 울타리에 앉았다.’는 것은 집 밖에 머물러 사람의 집안으로 들어와 물건을 더럽히지 말도록 하고자 한 것이니,
또한 간사하고 참소하는 사람을 외방으로 물리쳐서 조정에 있으면서 선량한 사람을 해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原注
예로부터 난폭한 군주만 참소를 믿어 정사를 해친 것이 아닙니다. 비록 자애롭고 화평한 군주라도 일단 참언만을 믿으면 또한 심지心志가 바뀔 수 있는 법입니다.
예를 들면 성왕成王이 주공周公을 의심했던 일이 이러한 경우입니다. 성왕成王이 어찌 화평한 자질을 가진 군주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처음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의 유언비어가 받아들여져서 하마터면 의심하고 멀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가 하늘이 위엄을 발동하는 데 힘입은 뒤에야 뉘우쳤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즐겁고 편안한 군자는 참언을 믿지 말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참소하는 사람의 실정은 뜻이 선량한 사람을 해치는 데 있어서 참소가 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안에 참소가 있으면 집안이 어지러워지고 나라에 참소가 있으면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법입니다. 관숙과 채숙이 유언비어를 퍼뜨리자 천하가 안정되지 못한 것이 바로 그 증험입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끝없이 남을 참소하여 천하를 휘저어놓았구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다시 실제 사실을 가리켜서 말하였으니 ‘두 사람’은 당시에 참소를 당한 사람입니다.
참소하는 사람이 참소하는 것은 모두 허위를 날조하여 단서를 만들기를 마치 장인이 재목을 끌어 모아 집을 짓는 것과 같으니, 두 사람이 본래 죄가 없지만 참소하는 사람이 그 죄를 교묘히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끝없이 남을 참소하여, 우리 둘을 얽어놓았구나.”라고 하였으니, 참언의 해로움이 끝이 없는 것을 가슴 아파한 것입니다. 〈항백巷伯〉과 〈청승靑蠅〉 두 시는 참소하는 사람의 정상을 거의 남김없이 묘사한 것이니 군주 된 자는 반복하여 살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