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注
12-17-나(按)
[臣按] 이것은 《詩經》 〈大雅 文王〉의 시입니다. 商나라의 자손으로서 周나라의 제후가 되고 殷나라의 훌륭한 사람으로서 주나라 종묘의 제사에 달려갔으니, 天命이 어찌 일정함이 있는 것이겠습니까.
湯王이 오직 仁하였기 때문에 천명이 商나라에 돌아간 것이며, 紂王이 오직 不仁하였기 때문에 천명이 방향을 바꾸어 周나라에 돌아간 것입니다.
상나라의 자손이 그 수를 10만으로 헤아렸으니 많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상나라를 지킬 수 없었던 것은 주나라가 仁하였기 때문이니, 상나라의 자손이 비록 많았다고는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맹자는 이 사례를 들어 한 나라의 임금이 仁을 좋아하면 천하에 그와 대적할 자가 없다는 것을 밝혔으니, 당시 임금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을 탄식한 것입니다.
전후 세 장에 세 번의 비유를 들었으니, “습한 것을 싫어하면서도 낮은 데 거하는 것과 같다.[惡濕而居下也]”라고 하였으며, “취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억지로 술을 마시는 것과 같다.[惡醉而强酒也]”라고 하였으며, “뜨거운 것을 손에 잡고서 물로 씻지 않는 것과 같다.[執熱而不以濯也]”라고 하였습니다. 당시의 임금을 경계한 점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