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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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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注
22-5-나(按)
按 子胥 先王之謀臣으로 與國同體 故其諫夫差也 欲專意於越而後齊하니
石之忠 之智 未有加焉者也어늘 宰嚭身爲大臣하여 受越重賂而反讒之하니
觀嚭讒胥之辭하니 一曰怨望이요 二曰怨望이라하니 夫爲人臣而怨其君 必誅之罪也
故嚭 以此中之하니 後之讒人 欲陷大臣之忠直者 率祖此術하나니 然則人臣有怨於其君 果可誅乎
原注
曰 怨若一而情不同하니 夫子之事親 雖勞不怨하나니 臣之事君 亦然而 何邪
蓋勞不怨 其常也어니와 至於懷誠抱義而君親 不之察則或天以自愬하나니
三致意焉하니 斯怨也 所以爲忠且孝인저
若子胥之怨 有無 固未可知어니와 縱使有之 亦必爲憂國愛君而發이어늘 夫差 以嚭之讒而遽誅之하니 宜其亡國也로다
後之讒臣 有以怨望誣君子者 其深察之니이다


原注
22-5-나()
蓍
龜
[신안臣按] 오자서伍子胥선왕先王(합려闔閭)의 모신謀臣으로 나라와 한 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부차夫差에게 간할 때 나라를 도모하는 데 전념하고 나라는 뒤에 도모하기를 바랐으니,
약석藥石과 같은 충성심과 시귀蓍龜와 같은 지혜가 오자서를 능가하는 이는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태재 백비太宰 伯嚭는 대신의 몸으로 월나라의 많은 뇌물을 받고 도리어 오자서를 참소하였으니, 오자서가 죽은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아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백비가 오자서를 참소한 말을 보니 첫째도 둘째도 원망한다는 말뿐이었습니다. 신하가 되어 자신의 임금을 원망하는 것은 틀림없이 주살될 죄입니다.
그러므로 백비가 이것으로 오자서를 중상하였으니, 후대의 참인讒人 가운데 충직한 대신을 모함하려고 하는 자는 대부분 이 술책을 본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임금에게 원망을 가진 신하를 과연 죽이는 것이 옳겠습니까.
原注
원망은 같은 것 같지만 실정은 같지 않습니다. 자식이 어버이를 섬길 때 비록 수고로워도 원망하지 않는 것이니,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 역시 그러합니다. 그런데 순임금에게 원망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과, 《시경》 〈소아小雅〉에 원망하고 비방하는 내용의 시가 있는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수고로워도 원망하지 않는 것은 정도正道이지만 성심을 가지고 의리를 간직했음에도 임금이나 어버이가 이를 알아주지 않는 데까지 이르면 혹 하늘을 부르짖으며 스스로 하소연을 하기도 하니,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서인가.”라고 하고, “하늘이 나를 낳음이여! 나의 시절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소離騷〉를 지은 것 또한 원망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나, 나라를 보존하고 임금을 편안하게 하는 의리가 한 편의 글 속에서 여러 차례 그러한 의미가 드러났으니, 여기에서의 원망은 다만 충성하고 효도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오자서의 원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참으로 알 수 없지만, 설령 있었다고 하더라도 오자서 또한 틀림없이 나라를 근심하고 임금을 사랑하여 나온 것인데 부차는 백비의 참소 때문에 오자서를 갑자기 주살하였으니, 그 나라가 망한 것이 마땅합니다.
훗날의 참신讒臣이 원망이라는 말을 가지고 군자를 헐뜯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깊이 살피소서.


역주
역주1 : 사고본에는 ‘金’으로 되어 있다.
역주2 蓍龜 : 蓍는 蓍草占, 龜는 거북점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시귀’는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을 상징한다.
역주3 子胥……吳矣 : 《사기》 〈吳太伯世家〉에 따르면 오자서가 죽은 것은 기원전 485년(吳王 夫差11)이며,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한 것은 기원전 473년(吳王 夫差23)의 일로, 眞德秀의 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史記 卷31 吳太伯世家》
역주4 大舜之有怨慕 : 《맹자》 〈萬章 上〉 제1장에 “萬章이 질문하기를 ‘舜이 밭으로 가서 하늘을 부르짖으며 울었으니 왜 부르짖으며 울었습니까?’라고 하자, 맹자가 대답하였다. ‘원망하고 사모한 것이다.’[萬章問曰 舜往于田 號泣于旻天 何爲其號泣也 孟子曰 怨慕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5 小雅之有怨誹 : 《史記》 卷84 〈屈原賈生列傳〉에 “《시경》 〈國風〉은 여색을 좋아하면서도 음란하지 않고, 〈小雅〉는 원망하고 비난하면서도 난폭하지 않다.[國風好色而不淫 小雅怨誹而不亂]”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6 : 사고본에는 없다.
역주7 : 사고본에는 ‘呼’로 되어 있다.
역주8 父母……何哉 : 《맹자》 〈萬章 上〉 제1장에 보인다.
역주9 天之……安在 : 《시경》 〈小雅 小弁〉에 보인다.
역주10 至離……意焉 : 《史記》 卷84 〈屈原賈生列傳〉에 “屈平이 〈離騷〉를 지은 것은 대체로 원망에서 비롯된 것이다.……굴평은 이미 楚 懷王이 秦나라에 억류된 일을 미워하여 비록 내쫓긴 신세임에도 초나라를 그리워하고 회왕에게 마음이 가서 잊지 않고 돌아가려고 하고 임금이 한번 깨닫고 풍속이 일변하기를 바랐다. 그는 임금을 보존하고 나라를 진흥시키는 것을 거듭 모색하고자 하여 한 편의 글 속에서 여러 차례 그러한 의미를 표현했다.[屈平之作離騷 蓋自怨生也……屈平旣嫉之 雖放流 睠顧楚國 繫心懷王 不忘欲反 冀幸君之一悟 俗之一改也 其存君興國而欲反覆之 一篇之中三致志焉]”라는 내용이 보인다.
역주11 : 509본에는 없다.
역주12 : 사고본에는 ‘祗’로 되어 있다.
역주13 : 사고본에는 ‘與’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4)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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