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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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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恐其分己權하여 乘間薦吏部侍郞 儒厚可以鎭風俗이라하여
20-9-가
盧杞는 國政을 쥐게 되자 德宗이 반드시 다시 재상을 세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권력이 분산될까 두려워 틈을 타서 吏部侍郞 關播가 儒雅하고 충후하여 풍속을 진무할 수 있다고 추천하였다.
하니 皆決於杞하고 但歛衽無所可否러라
그리하여 관파를 中書侍郞‧同平章事로 삼으니, 일이 모두 노기에게서 결정되었고 관파는 그저 옷깃만 여미고서 가부를 나타내는 법이 없었다.
嘗與宰相論事 意有所不可하여 起立欲言이어늘 目之而止하고
덕종이 언젠가 재상들과 정사를 논할 때 관파가 생각에 불가한 점이 있어 일어나 말을 하려고 하자, 노기가 눈짓하여 이를 제지하였다.
還至하여 謂播曰 以足下 端慤少言이라 故相引至此호니 奈何發口欲言邪 自是不敢復言하더라
그리고 中書省으로 돌아와서는 노기가 관파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단아하고 성실하며 말수가 적기 때문에 이끌어서 이 자리까지 오게 한 것입니다. 조금 전에 어찌하여 입을 놀려 말을 하고자 하였습니까?” 관파가 이때부터 감히 다시는 말을 하지 못하였다.
역주
역주1 20-9-가 : 《資治通鑑》 권227 〈唐紀43 德宗2〉 建中 3년(782) 10월 조에 보인다.
역주2 盧杞……立相 : 盧杞는 재상인 張鎰을 鳳翔으로 쫓아내었기 때문에 덕종이 다시 새로운 재상을 임명할 것임을 안 것이다. 20-8-가 참조.
역주3 關播 : 719~797. 唐 德宗 때의 재상이다. 자는 務元이며 지금의 하남성 衛輝市인 衛州 汲縣 사람이다. 進士에 급제한 뒤 淮南節度判官, 滁(저)州刺史, 兵部員外郞, 河中少尹, 給事中, 刑部尙書 등을 역임하였다. 덕종 建中 3년(782)에 盧杞의 추천으로 재상이 되어 中書侍郞‧同平章事에 임명되었다. 涇原兵變 후에 刑部尙書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右僕射, 兵部尙書가 되었다. 사후에 太子太保에 추증되었다. 열전이 《舊唐書》 권130과 《新唐書》 권151에 있다.
역주4 以播……章事 : 덕종 建中 3년(782) 10월 7일 丙辰日의 일이다.
역주5 : 대전본‧사고본에는 없다.
역주6 中書 : 여기에서는 中書省 政事堂을 가리킨다.
역주7 : 대전본‧사고본에는 ‘曏(향)’으로 되어 있다.

대학연의(4) 책은 2019.10.11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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