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月
에 하여 朝朔望
하고 러니 恭‧顯
이 白
하여 皆以爲中郞
하다
上
이 器重望之不已
하사 欲倚以爲相
하니 恭‧顯及
가 皆側目於望之等
注+許氏‧史氏皆外戚也.하더라
更生
이 乃使其外親
하여 言
이라 宜退恭‧顯
하여 以章蔽善之罰
하시고 進望之等
하여 以通賢者之路
하소서
書奏에 恭‧顯이 疑更生所爲하여 白請考姦詐하니 辭果服이어늘 遂逮更生繫獄하여 免爲庶人하다
會望之子伋
이 亦上書訟
한대 事下
에 有司
가 復奏望之敎子上書
하여 失大臣體
하니 이라 請逮捕
어늘
恭‧顯等이 知望之素高節不詘辱하고 建白 望之가 前幸得不坐하여 復賜爵邑이어시늘 不悔過服罪하고 敎子上書하여 歸非於上하니
自以託師傅라 終必不坐라하나니 非頗屈望之於牢獄하여 塞其怏怏心則聖朝가 無以施恩厚니이다
上이 曰 蕭太傅가 素剛하니 安肯就吏리오 顯等이 曰 人命이 至重하고 望之所坐는 語言薄罪라 必無所憂니이다
上
이 乃可其奏
하신대 顯
이 封詔以付
하여 令召望之
하고 急發
車騎
하여 圍其第
注+執金吾, 掌兵官也.러니
使者가 至하여 召望之한대 望之가 飮鴆自殺하니 天子가 聞之하시고 驚拊手曰 曩固疑其不就牢獄이러니 果然殺吾賢傅로다
太官
이 方上晝食
注+太官, 主御膳.이러니 上
이 卻食涕泣
하시고 召顯等
하여 責問以議不詳
하신대 皆
謝良久然後
에 已
하다
18-10-가
4월에 조서로 소망지蕭望之에게 관내후關內侯‧급사중給事中의 관작을 내려서 초하루와 보름에 조회하도록 하였다. 다시 주감周堪과 유경생劉更生을 불러 간대부諫大夫에 임명하고자 하였는데, 홍공弘恭과 석현石顯이 아뢰어서 모두 중랑中郞에 임명하였다.
원제元帝가
소망지蕭望之를 계속해서 매우 중시하여 그를 의지하여 승상으로 삼으려 하자,
홍공弘恭‧
석현石顯과 외척인
허씨許氏‧
사씨史氏의 자제들이 모두 소망지 등을 질시하였다.
注+허씨許氏와 사씨史氏는 모두 외척이다.
유경생劉更生이 이에 자신의 외갓집 사람을 시켜 다음과 같이 변고를 고하게 하였다. “지진이 일어난 것은 아마도 홍공 등 때문인 듯합니다. 의당 홍공과 석현을 내쳐서 현자賢者를 가린 벌을 밝게 드러내시고 소망지 등을 등용하여 현자賢者의 길을 여소서.”
글이 상주되자 홍공과 석현은 유갱생이 한 것이라고 의심하여 원제에게 아뢰어 그 간사한 정상을 조사하도록 청하였는데, 공초供招에서 자신들의 예측대로 자복하자 마침내 유갱생을 체포하여 옥에 가두고 면직시켜 서인庶人으로 만들었다.
마침 소망지의 아들 소급蕭伋 역시 글을 올려 소망지의 예전 일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였는데, 안건이 회부되자 담당 관리가 다음과 같이 복주覆奏하였다. “소망지蕭望之가 아들을 시켜 글을 올리게 해서 대신의 체모를 잃어버렸으니 불경不敬합니다. 체포하소서.”
홍공弘恭과 석현石顯 등은 소망지가 평소에 절조를 중시하여 굴욕을 받지 않을 것임을 알고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소망지가 전에 요행으로 죄에 걸리지 않아 폐하께서 다시 관작官爵과 식읍을 내려주셨는데도 잘못을 뉘우치며 죄를 인정하지 않고 아들에게 글을 올리도록 하여 폐하에게 그 잘못을 돌렸으니,
자신이 폐하의 사부라는 것을 믿고 어찌되었든 반드시 죄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소망지를 옥에 가두어서 굴욕을 상당히 받게 하여 그 앙앙불락 원망하는 마음을 막지 않는다면 성조聖朝에서 후한 은택을 베풀 길이 없을 것입니다.”
원제元帝가 말하였다. “소태부蕭太傅가 평소 강직하니 어찌 옥리獄吏에게 나아가 심문을 받으려고 하겠는가?” 석현石顯 등이 대답하였다.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중하고 소망지蕭望之가 저촉한 죄는 말로 인한 작은 죄입니다. 반드시 폐하께서 우려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원제가 이에 그 상주를 윤허하자, 석현이 조서를 밀봉하여
알자謁者에게 보내 소망지를 부르도록 하고, 급히
집금오執金吾의 기병을 출동시켜 소망지의 집을 포위하였다.
注+‘집금오執金吾’는 군사를 관장하는 관직이다.
사신이 도착하여 소망지를 부르자, 소망지가 짐독鴆毒을 마시고 자살하였다. 천자가 이 소식을 듣고 놀라 손뼉을 치며 말하였다. “내 일찍이 참으로 그가 감옥에 가지 않을 것임을 의심하였는데, 우려했던 대로 내 어진 사부를 죽였구나!”
태관太官이 마침 점심 식사를 올렸는데,
注+‘태관太官’은 임금의 음식을 주관한다. 원제가 식사를 물리치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석현 등을 불러서 논의가 면밀하지 못하였다고 문책하자, 석현 등이 모두 관모를 벗고 한참을 사죄한 뒤에야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