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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衍義(4)

대학연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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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武帝天漢末注+天漢, 年號也. 하여 告趙太子陰事하니 太子 坐廢하다
召充入見 奇之하여 與語政事大悅하시니 由是有寵이라 拜爲使者하여 督察貴戚‧近臣踰侈者하신대
擧劾無所避하니 以爲忠直하고 所言 皆中意라하더시다
嘗從上할새 逢太子 乘車馬行하여 以屬吏어늘
太子 聞之하고 使人謝充한대 不聽하고 遂白奏하니 曰 人臣 當如是矣라하고 大見信用하니 威震京師하더라


22-12-가1
한 무제 천한漢 武帝 天漢 연간(기원전 100~기원전 97) 말엽에注+천한天漢’은 연호이다. 조국趙國 사람 강충江充조경숙왕趙敬肅王(유팽조劉彭祖)의 문객門客이었는데, 조 태자 유단趙 太子 劉丹에게 죄를 짓고서 도주하여 궁궐로 와서 조 태자의 은밀한 일을 고발하니 조 태자가 연루되어 폐위되었다.
甘泉宮甘泉宮
무제가 강충을 불러들여 만나보고는 그를 뛰어나게 여겨 그와 정사에 대해 이야기하고서 크게 기뻐하니, 이로 말미암아 강충을 총애하였다. 그를 직지수의사자直指繡衣使者로 임명하여 귀척貴戚근신近臣으로서 법도를 넘거나 사치를 부리는 자를 감찰하게 하였다.
강충이 적발하고 탄핵하는 데 있어 기피하는 바가 없으니, 무제가 그를 충직하다고 여기고 강충이 말하는 것마다 모두 마음에 든다고 하였다.
강충이 한번은 무제를 수행하여 감천궁甘泉宮으로 갔을 때, 태자의 심부름꾼이 거마를 타고 치도馳道 안으로 가고 있는 모습과 맞닥뜨려 강충이 그를 법리法吏에게 회부하였다.
그러자 태자가 그 소식을 듣고 사람을 시켜 강충에게 사과했는데, 강충은 듣지 않고 마침내 무제에게 상주하자 무제가 말하였다. “신하가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 강충이 크게 무제의 신임을 받으니 그의 위세가 경사京師를 진동시켰다.


역주
역주1 22-12-가1 : 《漢書》 卷45 〈江充傳〉, 《資治通鑑》 卷22 〈漢紀14 武帝 下之下〉 太始 3년(기원전 94) 기사에 보인다.
역주2 趙人……詣闕 : 강충은 漢나라 趙國 邯鄲(한단) 사람으로, 가무에 능했던 강충의 누이가 趙 太子 劉丹에게 시집을 간 것이 계기가 되어 강충이 趙敬肅王 劉彭祖의 上客이 되었다. 그런데 유단은 강충이 자신의 사적인 일을 유팽조에게 고한다는 이유로 강충과 사이가 틀어져 그를 체포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강충의 父兄을 棄市刑에 처했다. 이에 강충이 長安의 황궁으로 가서 유단이 누이 및 유팽조의 후궁과 간음했다고 모함하여 무제를 격노하게 만들었다. 무제가 詔書를 내려 군대를 동원해 趙王의 궁을 포위한 뒤 유단을 잡아들여 구금하였다. 유단은 결국 태자에서 폐위되었다. 《漢書 卷45 江充傳》
역주3 直指繡衣使者 : 繡衣直指使者, 繡衣直指, 繡衣御史라고도 한다. 漢 武帝 때 둔 관직으로, 常設職은 아니었다. 간사한 자를 討捕하거나 큰 獄事를 다스리는 일을 전담하기 위한 관직이다. 使命을 받들고 나갈 때 繡衣를 착용하였는데, 郡國의 군대를 징발하거나 상벌을 시행할 수 있었다. 《漢書辭典 直指使者》
역주4 使者하여 使 : 509본에는 ‘使者使하여’로 되어 있으나, 오류이다.
역주5 甘泉 : 甘泉宮을 가리킨다. 현재 陝西省 淳化 서북쪽에 있는 甘泉山에 있었다. 《漢書辭典 甘泉宮》
역주6 家使 : 顔師古에 따르면, 당시 甘泉宮에 있던 武帝에게 문후를 여쭈고자 태자가 보낸 사람이다. 《漢書 卷45 江充傳 顔師古注》
역주7 馳道 : 황제의 거마가 다니는 전용 도로를 말한다. 《資治通鑑 卷7 秦紀2 始皇帝 下 胡三省注》

대학연의(4)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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