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代宗
이 始未甚重佛
이러니 宰相
‧
이 皆好佛
호대 縉
이 尤甚
이러라
上
이 嘗問 佛言
이 果有之邪
아 載等
이 對曰 國家運祚靈長
이 非宿植福業
이면 何以致之
리오
福業
이 已定
이면 雖時有小灾
나 終不能爲害
하나니 所以
하고 하고 가 不戰而退
하니
此皆非人力所及
이라 豈得言無報應也
리잇고 上
이 由是
로 深信之
하사 常於禁中
에 百餘人
하고
有寇
가 至則令僧
으로 講
하여 以禳之
하고 寇去則厚加賞賜
하니 良田美利
가 多歸僧寺
하더라
13-12-가
唐 代宗이 처음에는 그다지 부처를 중히 여기지 않았다. 宰相 元載와 王縉이 모두 부처를 좋아하였는데, 왕진이 더 심하였다.
대종이 한번은 다음과 같이 물었다. “부처가 말하는 報應이 과연 있는가?” 원재 등이 대답하였다. “국가의 운이 오랜 세월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이전부터 福業을 심어놓지 않았으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왔겠습니까.
복업이 정해지고 나면 이따금 작은 재앙이 생기더라도 마침내 해악이 되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安祿山과 史思明은 모두 아들에게 화를 당하였고 僕固懷恩은 타지에서 병들어 죽었으며 두 夷狄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물러났으니,
이는 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찌 보응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종이 이로 말미암아 불교를 깊이 신봉하여 늘 궁중에서 백여 명에게 飯僧을 하였다.
그리고 외적이 쳐들어오면 승려들을 시켜 《仁王經》을 강하게 하여 재앙을 물리치게 하고, 외적이 물러가면 상을 후하게 내려주니 좋은 전토와 많은 이익이 대부분 사찰에 귀속되었다.
원재 등이 대종을 모실 때 佛事를 많이 이야기하니 政刑이 날로 문란해졌다.